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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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간이란 공동체 앞에서 얼마나 사소해질 수 있는 것인지. 또한 개인의 농담 한마디가 사회안에서 얼마나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이 책 한권 속의 루브빅의 인생을 바라보고 한없이 슬퍼졌다.

이 소설은 그 당시에도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 지금에도 사랑받을 수 있는것은 지금은 실패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의식 때문이라고 한다.(물론 후반 자본주의의 유입에 따른 개인주의에 대한 비꼼도 있다.) 사회주의 속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커다란 메시지 이외에도 루드빅-루드빅의 입장, 헬레나, 야로슬라브, 코스트카가 바라보는 루드빅으로 그려지는-의 20년간의 인생은 나의 머리와 가슴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밀란 쿤데라(나는 이제서야 만난 훌륭한 작가)의 작가적 기교-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을 표현한 섬세한 필치- 때문에 이 소설에 빠진 5일간은 나의 정신을 그 당시 체코로 순간이동 시켜놓았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분위기는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빅"

마르케타에게 보내는 엽서에 담은 농담에 의해 당과 학교에서 축출당한 루드빅은 정치범으로 낙인찍혀 광산으로 보내진다. 그 시절 만난 루치에. 루드빅에게 루치에는 순수함이었고, 타의로 뒤틀려버린 자신의 인생의 구원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에게 거절 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루드빅은 오랜시간 루치에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녀의 행동을 질책하며 지낸다. 그러나 코스트카에 의해 알게된 루치에의 과거 - 그로인해 루드빅은 루치에를 배려하지 못한 자신을 비난한다. 그리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데 앞장 선 제마넥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제마넥의 아내인 헬레나를 유혹하여 불륜을 저지르지만 제마넥과 헬레나는 이미 서로의 불륜을 인정하는 사이로 결국 자신이 놓은 덫에 자신이 걸려버린 듯 하다. 결국 아무것도 모른채 사랑에 빠진 헬레나만 측은해질뿐이다. 마지막 자살을 하려한 헬레나가 잘못 알고 먹은 변비약- 그로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극으로 치닫는 결말에 허탈한 웃음이 나오게했다. 그리고 옛것을 고수하고 전통음악을 하는 야로슬라브- 변해가는 사회분위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친구의 순수와 고집이 허무하고 측은해진다.

농담으로부터 시작된 농담같은 한사람의 인생. 과연 이 인생에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책을 읽고 난 후 그 답이 모호해졌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사람들(공동체)에 의해 한순간에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되어 남을 증오하며, 피해의식으로 살아가는 루드빅,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재빨리 가면을 바꾸어쓴 제마넥, 자신의 상처로 인해 닫혀있었던 루치에, 오직 전통음악만을 고집하는 야로슬라브...모든 등장인물들에게는 각각의 입장이 있고 각각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라는 것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마주한 이들은 모두 서로에게 피해자며 가해자가 되었다. 누구도 완전한 악인도 아니고 완전한 피해자도 아니게 되었다. 이런 그들에게 복수란것은 허망한 것이 되었으며, 용서라는 것도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한번 망각의 힘을 믿어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그들에게는, 이런 시대에는 가장 중요한 가치란 무엇일까.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에게 던져주는 메세지란 무엇일까. 가슴이 텅빈 듯한 느낌이다.
 

* 슬픔, 우울의 공감보다 사람을 더 빨리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그 가까움이 거짓인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말없이 고요하게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이런 분위기는 그 어떤 두려움이나 방어도 잠들게 하며 섬세한 영혼도 속된 자도 모두 감지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사람을 가까워지게 만드는 방식 중 가장 쉬운 것이면서 반면에  가장 드문 것이기도 하다. (제3부 루드빅 p.102) 

* 어떤 사람이 미친 듯이 등불을 흔들어대며 해안가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밤에, 길 잃은 배가 거친 파도에 휩싸여 헤멜 때, 이 사람은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천상과 지옥 사이의 경계에 있다. 그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서 좋거나 나쁘지 않다. 오로지 어떤 행위가 어떤 질서 속에 놓여 있느냐 하는 것만이 그 행위를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만든다. (제6부 코스트카 p.325) 

*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 상쇄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사물, 행위,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제7부 루드빅-헬레나-야로슬라브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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