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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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책은 물음표로 끝나는 의문문이 아니라 ...(말줄임표)로 끝나야한다고 작가는 강조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책을 읽고 난 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것이 yes or no로, 또는 good or bad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다는 그런 감정의 모호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로 인해 책을 읽는 나에게도 더 긴 여운을 남겨주는 듯하다.) 로제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편지로 데이트 신청을 했던 시몽. 그 간단한 한줄의 물음에 대답을 주저하는 폴은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p.57) 

서른아홉살의 폴, 그녀의 애인인 로제. 로제로부터 안정을 찾길 원하는 폴과는 달리 로제는 다른 젊은 여인과 바람을 피운다. 그러한 사실을 알지만 묵인하는 폴. 그런 중에 스물 다섯살의 시몽이 폴에게 다가온다. 그런 시몽으로부터 받는 관심과 사랑. 그런것들로 폴은 행복을 느끼고 시몽을 받아들이지만 어린 시몽의 그런 감정이란 한때의 불장난으로 그치고 말거라는 불안감은 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여러달의 흐름. 마음 한켠 로제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폴은 결국 자신에게 늘 외로움을 주는 로제를 선택한다.

이 세사람의 말과 행동,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에 얼마나 마음이 두근두근하고 가슴이 아련해졌는지 모른다. 대단한 사건이 있는것도, 우리에게 거대한 작가의 사상을 불어넣는 것이 아니지만 책의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가슴을 울리는 떨림이 있는 듯하다.(내가 너무 감수성이 풍부한지도 몰라...큭)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삶이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가끔은 너무 우울한 내용이 책이어서, 또는 너무 섬세하게 감정표현을 하는 책을 보다보면 문득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편의 멜로영화를 본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머릿속에 주인공들의 이미지는 책을 읽기 시작함과 동시에 이미 그려놨다. ㅋ)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의 감정을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이 책을 쓴 작가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던 사람이었길래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난 뒤, 그 여운이 가시기 전 작가연보와 옮긴이의 작품해설을 보고 쓸쓸한 작가의 삶을 죽 머리속에 그리고 나니 책을 덮었음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 나를 꽁꽁 묶어서 쉽사리 현실로 돌아올 수 없는 기분이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남긴 프랑수아즈 사강은 자신의 남긴 말대로 도박과 알코올, 약물중독, 연애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 그 말 속에 자신의 삶을 함축해놓은 듯 싶다.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예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두죠." 그 삶이 행복했는지는 나로서는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자신을 파괴할 용기를 가진 그녀였기에,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열정을 가진 그런 그녀였기에 이런 작품을 스물넷의 어린나이에 쓸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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