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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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상을 탄 작가의 작품을 읽게되면 그로 인해서 그 작품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수 없다고. 물론 나는 작품을 평할 만큼 지성을 갖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상을 탄 작가의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작품성이건 오락성이건, 어떤것이라도 어느정도는 검증이 된 작품 같아서.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예전부터 황금노트북 시리즈를 눈여겨 보고 있었지만 3권짜리라는 압박감으로 계속 미루어두고 있었다. 그러다 인터넷 검색  중 누군가가 올린 '다섯째 아이'라는 작품의 리뷰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작품이 아닌 리뷰만으로 내게 이렇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책이라니. 사실 가족 이야기라는, 그리고 가족의 구성원 한명이 전체의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한다는 것부터가 내겐 공감과 더불어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였다. 난 항상 가족에 대한 피해의식을 어느정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게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책이었을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기 자신이 완성되어 있다고 느낄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모자란 부분이나 상처받은 부분을 편안함과 안정감으로 채워주는 가족으로 인해 상처는 치유받고 완성된 인간이 된다고 느낄것이다. 물론 공동체 의식이 강한, 특히 가족 사회에서만큼은 어느 나라에도 비할수 없을 만큼 강한 의식을 가진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완벽하게 다른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나의 가족이라면. 그래도 가족이 그런 의미로 다가올까.
도리스레싱은 이 이야기의 영감을 두군데에서 얻었다고 한다. 한가지는 아직 빙하시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도 내려온다는 인류학자의 글과 어느 여인이 세 아이를 잘키우고 있는데 네번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모두 망쳐버렸다는 이야기로 잡지에 기고한 글이라고 한다. 

너무나 행복한 가정이 있다.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커다란 집을 사서 많은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소망이었다. 그 소망은 그들에게 많은 친척들마저도 결속하게 하는 힘을 발휘했다. 네째 아이를 낳을때까지는. 그러나 다섯번째 아이 '벤'을 임신하고나서부터 그 행복은 점점 깨어지고 부서져간다. 벤을 임신하고나서 부터 해리엇은 그 아이의 난폭함으로 인한 굉장한 고통을 진정제를 무기 삼아  참아낸다. 그 아이는 엄마 뱃속에 있을때부터 그들과는 달랐다. 그리고 8개월만에 세상으로 나온 벤.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는 달랐다. 아이는 난폭함과 잔인함이 있었고 공격적인 아이의 행동으로 인해 가족들은 늘 조심하고 인내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회의. 벤을 시설로 보내기로 한다. 

그 다음날부터 가족들은 물에 불린 종이꽃처럼 피어났다. 벤이 얼마나 짐이 되었는지, 얼마나 그들을 억눌렀는지, 애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해리엇은 깨달았다. 또한 부모가 알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애들이 자기들끼리 말하고 있었으며 벤과 타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벤이 떠나자 애들의 눈은 빛났고 활기로 가득 찼고 해리엇에게 사탕이나 장난감 같은 작은 선물을 갖고 와서 [이건 엄마에게 줄거예요]라고 말했다. -p104

벤이 떠나고 난 뒤 가족은 행복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를 그렇게 죽게 내버려둘수는 없었다. 결국 시설에서 벤을 데려온 후, 벤을 참을 수 없는 가족들은 해리엇만을 남겨둔 채 하나  둘 떠나게 된다. 그리고 비행청소년이 된 벤이 집을 떠나게 되면 다시 조용하게 삶을 이어갈거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마친다. 

난 책을 읽는 내내 희망의 실마리라도 발견하려고 애썼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내게 설명하고 상처를 주고는 그대로 끝내 버리는건 너무 잔인하다. 가족들이 조금 더 벤을 받아들여주기를, 아니면 벤이 해리엇의 사랑으로 인해 손톱만큼이라도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휴... 점점 희망을 읽고 나중에는 벤이 그냥 정상인이 아니란 사실을 작가가 말해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건 그저 내 희망일 뿐이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의미는 어렸을때부터 쇄뇌당한 것들로 가득차 있어서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버팀목이 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성애, 첫째 아이의 의젓함, 동생들의 싹싹함과 귀여움. 이런것들이 살면서 내가 그려온 가족의 이미지이다. 그런 이미지가 산산히 깨어진 것에 대해 내가 당혹스러워하고 분노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혼란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니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내 가족으로서 '벤'을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감싸줄수 있을런지. 그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었는지. 벤을 떠나는 가족들을 더 이해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순간 섬칫한다. 결국 대답을 찾을 수 없는 나의 입은 그저 한숨만 내쉰다. 

책을 덮으며 꼭꼭 다짐한 것은 임신한 내 친구들에게는 절대 이 책을 권하지 않을거란 사실이다. 물론 나도 아이를 갖게 되면 이 책의 내용은 나의 머릿속 가장 귀퉁이에 숨겨둘 참이다. 그렇지만 이 책으로 인해 아팠지만 그로인해 나에게 더욱 커지는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 놓고 잊지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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