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을유사상고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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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라이프온마스'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경찰서라는 배경으로 벌어지는 드라마 속의 사건들은 그동안 듣고 보았던 범죄사건들을 적당히 활용한 것 같았고 주인공의 특별한 사연이 뒤섞여서 에피소드들이 흘러갔다. 늦은 밤 기분전환으로 가볍게 보아가던 드라마였고 내게 그 드라마는 그런 식으로 끝맺음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의 가벼움이 반전되는 결말을 보고 한동안 충격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며칠간 행복에 대한 나의 생각을 곱씹어보았다. 주인공의 결정이 그동안 내가 생각해 온 행복에 대한 태도와 가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행복을 향한 적극적인 의지로 보여서 비난하거나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나는 그 무렵 드라마와 함께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 보았기 때문에 행복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했던 것 같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은 염세주의자가 쓰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어 어쩐지 감이 오지 않는 책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편견에서 오는 오류였다. 염세주의자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만 허우적댈 것이라는 편견말이다. 염세주의자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삶이 고통이 가득한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고통의 시작은 행복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직시하고 사유한다. 어둡고 추울 것이라고 생각한 이 책은 읽다 보니 밝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고통의 밑바닥에서부터의 사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자산을 세 가지로 나눈다. 인간이 본래 지닌 것(인격)과 본인이 지닌 것(재산, 소유물),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명예, 지위, 명성)이다. 이 중 우리는 인간이 원래 지닌 것에서 본질적인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을 가로막는 두 가지 적수-궁핍과 결핍이 주는 '고통'과 안정과 과잉으로부터 비롯되는 '무료함'-는 인간이 본래 지닌 인격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론에 대해서 사유한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을 통해 자신의 가진 관념들을 풀어놓는다. 사실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자세로 임했다. 노트에 정리하고 필사했다. 그러나 인생론에 들어가서는 쇼펜하우어의 생각들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목차를 보며 이 에세이의 성격을 알 것만 같았다. 생존의 공허함, 세상의 고통의 이론에 대한 글, 소음과 잡음에 대한 글이라는 에세이 제목에 쇼펜하우어의 세계관을 알 것 같았다. 특히 '자살에 대하여'라는 글은 쇼펜하우어가 사유한 세계가 어떤 분위기였는지 알 것 같았다. 쇼펜하우어는 생존이 공허하고 세상은 고통에 차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려면 스스로 사고해야 하고 삶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삶의 방향을 행복한 쪽으로 이끈다고 믿어왔지만 삶의 고통을 직시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함을 느꼈다. 내가 ‘라이프온마스’를 보며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이 삶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살고 싶은 적극적인 의지로 보였던 것은 이런 이유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론에서 가장 재미있던 부분은 독서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얻는 것이고 자신의 사고를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독서는 정신의 탄력성을 빼앗아가므로 책을 많이 읽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사고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끌려다니게 되므로 스스로 사고하고, 읽지 않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한다. 읽지 않는 기술이란 좋지 않은 책을 읽지 않는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새로 나온 책보다는 오랜 시간 살아남은 고전을 읽으라고 말한다. 읽은 책의 양을 늘리고 싶어서 구미에 당기는 책만을 골라왔던 나는 반성한다.

올해는 철학책을 읽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은 철학에세이로 볼 수 있지만 읽기 쉬웠다고 할 수 없다. 쇼펜하우어의 진지한 삶의 자세가 책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책을 다 덮은 이후에도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잘 알게되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철학책을 읽는 것은 그 철학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그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세상에 대한 생각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어쩌면 쇼펜하우어가 말했던, 책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스스로 사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두고두고 다시 읽겠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쇼펜하우어와 사유를 나눌수 있게 될지도.....

p.195 '나이의 차이에 대하여' 중
우리는 평생에 걸쳐 현재만을 소유할 뿐 결코 그 이상은 아니다. 같은 현재인데 차이가 나는 점은 처음에는 우리 눈앞에 긴 미래가 펼쳐져 있지만, 마지막이 되면 긴 과거가 우리의 뒤에 보인다는 사실과 우리의 성격은 변하지 않지만 기질은 여러 번 친숙한 변화를 겪어 매번 현재의 색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p.209
넓은 의미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첫 40년은 본문을 제공하고, 그다음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의 성격을 지닌다. 이 주석은 본문에 들어있는 도덕과 온갖 미묘한 맛 말고도 본문의 참된 의미와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법을 가르친다.

p.255 '생존의 공허함의 이론에 대한 몇 가지 추가 기록' 중
우리의 삶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데, 우리는 그 점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렌즈로 확대해 엄청나게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이란 그것의 지속에 의해 사물과 우리 자신의 극히 공허한 존재가 실재한다는 허상을 주기 위한 우리의 머릿속에 든 하나의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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