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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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밑 세상에 대해서는 개미굴의 구조나 두더지들이 어떻게 땅밑에 길을 내어 이동하는지 정도의 호기심 말고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그곳은 나를 포함한 생명체들의 발이 지지하는 단단한 암석과광물들의 집합이었을 뿐이었다. 또한 중력이라는 강력한 힘을 지닌 실체가 밀도와 무게로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땅 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땅밑 세상은 무엇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그렇게 때문에 결론은 ‘무(無)‘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헤아리고 있었다.

땅 아래를 탐구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적 필요나 흥미에 의해 일부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나의 관심은 늘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땅 위의 세상에 대한, 수평적 시선에 국한되어 있었을 것이다. 시야를 넓힌다고 하더라도 내 시야의 각도는 고개를 들어 볼 수 있는 둔각을 이루고 있었지, 아래를 향하는 예각이었던 적은 없었다. 시선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하락, 몰락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했을 때에도 땅 위에서 나고 성장하는 상승의 이미지를 밝은 것으로 여겼다면 늙어감과 죽음은 후퇴와 쇠락을 나타내고 결국 땅 밑으로 매장되는 결론은 어두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목표로 상승하는 것만을 꿈꾸었다.



[언더랜드]는 나에게 그런 고정관념을 깨 주는, 내 좁은 생각을 넓혀주고 알지 못했던 세상의 광활함을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책은 저자가 6년 동안 땅밑 세상을 탐험하고 조사하여 쓴 자연과학 인문서이다. 작가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깊고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땅밑 세상인 ‘언더랜드‘를 탐험한다. 작가의 생생한 탐험기를 따라가며 수평적인 세계관 속에서 제한된 시각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수직적인 세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가슴을 가장 많이 울렸던 것은 시와 분, 연이 아닌 세와 누대라는 인간의 시간을 하찮게 만드는 단위로 흘러가는 언더랜드의 시간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땅 밑 세상은 멈춰있다고, 단단하게 굳어있다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던 나는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다. 사실은 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시간은 흐르고 있고 언더랜드의 기록은 그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언더랜드는 소중한 것을 지키는 은신처의 역할, 유용한 것을 생산하는 생산지의 역할, 해로운 것을 처분하는 처리 역할을 해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매장하여 애도하고, 암흑물질을 연구하기 위한 장소로서 언더랜드의 어둠을 찾아간다. 땅 위 세상에 보관하지 못하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굴을 파서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도, 대량 학살 장소로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핵 폐기물과 같이 인간에 의해 필요를 다한 것들을 매장한다. 언더랜드는 이와 같이 많은 역할들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쌓고 쌓아왔다.

나의 마음을 가장 뜨겁게 한 것은 4장 ‘언더스토리‘였다. 언더스토리는 숲에 대해 이야기한다. www(wood wide web)에 대해 알려주고 숲은 균과 곰팡이로 연결된 커뮤니티가 존재해서 뿌리를 통해 식물들끼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숲 전체가 하나의 식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수평적으로만 유전물질이(생식을 통해서) 전달된다고 알고 있는데 균을 통해 유전물질이 수직적으로도 전달될 수 있음을, 식물들은 서로 공생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너무나 인간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내게, 균이라는 미물들도 서로 상생하며 거대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책을 덮으며 고개를 내리고 나를 지탱하는 발 밑 세상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 하락이나 몰락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다. 이것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고, 상생하기 위한 지혜를 얻는 것이기도 했다. 끝없는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것처럼 단단하게 응축된 지구의 일생을 궁금해하는 것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크고 거대한 것을 탐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책 [언더랜드]를 통해 인간에 의해 지구의 많은 것이 변화하는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후대를 위해 어떤 삶의 자세를 갖아야 하는 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남기는 흔적들이 하나, 둘 언더랜드에 축적되고 있음을 기억하고 내가 어떤 것을 남겨야하고 남길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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