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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 조용하게 이긴다 우아하게 바꾼다.
이혜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평점 :
- 최근에 들은 이야기들
1. 요즘의 중고등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분식집에 갔을 때 돈이 없는 사람은 먹고 있는 친구들 옆에서 멀뚱히 기다린다고 한다. 나는 먹고 있는 나의 옆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면 마음이 쓰일 것 같은데 요즘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먹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매너를 지키는 것이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2.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에게 들었다. 함께 작업하는 분(대학생)의 지인이 삶을 포기했다고 한다. 대학생인 그 사람이 현실의 녹록하지 않음을 비관해서 일어난 일인 것 같다고 한다. 나의 친구는 만난 적은 없지만 일로 인해 연결점이 있는 사람이라 그 소식에 힘들었다고 하는데 정작 함께 작업하는 분은 지인의 죽음에도 생각보다 의연하더란다. 이런 일들이 요즘 취업준비생 또는 사회초년생들에게 예상보다 더 많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 같다고 한다.
3. 독서모임에서 들었던 책 ‘피로사회’. 쉼 없이 채찍질하는 성과위주 사회에서 톱니바퀴처럼 돌고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염려와 피로사회로 진입한 이 사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나 그날들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그 청소년들이었다면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각자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서 상황이 불편해질 경우에는 차라리 먹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다. 만약 내가 수없이 많은 좌절을 겪는 취준생이라면 스펙과 능률 위주의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노력을 할 것이다. 도저히 그 산을 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생활의 고단함을 받아들이며 살지도 모른다. 삶을 포기할 정도로 얼마나 큰 괴로움을 느꼈을까 안타깝다가도 시련을 견디지 못한 것은 결국 나약함일 거라고 헤아려 본다. 있는 그대로, 그들이 느끼는 그대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내게 누군가는 꼰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피로사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무한 긍정과 성과주의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아도 그런 사회의 이념을 당연한 듯 체득하여 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거리감을 느꼈을 것 같았다.
일상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들으며 나는 '아, 나와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데? 왜 그렇게 행동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 찾은 가장 좋은 이유는 '나와는 세대가 달라서 그래.'였다. 그들이 나와 생각이 어떻게 다르고 어떤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해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세대의 다름'에 따른 차이를 곧이곧대로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려고 하는 편리함이었다. 물론 현재의 나는 치열한 일상을 꾸리는 경제주체가 아니고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의 폭은 좁고 듣는 이야기들은 단편적일지도 모른다. 대부분 한정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그것들은 소소한 문제들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듣고 경험한 일들로 나보다 어린 세대들을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최근 책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를 읽으며 세대차이에 대한 현상 분석이 아니라 내가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89년생 현직 기자가 쓴 이 책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 보이는 MZ세대의 생각과 행동, 생활 방식들에 대해 조곤조곤 풀어서 설명해준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서술되는 이야기들은 흥미롭고 문장은 기자답지 않게 재치 있다가도 기자답게 명료하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물론 세대는 살짝 비껴있을지라도) 배경과 상황에 대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새벽 5시 기상을 해서 명상을 하며 자신의 내면을 가꾸어 나가고, 주식과 부동산 등의 정보에 밝아서 저축보다는 적극적 투자로 인해 자산을 불려 나가고, 환경문제와 동물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돈을 써야 할 것과 아닌 것을 엄격하게 분리하지만 배움을 위한 소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념 또는 신념의 중립을 지키며, 본인의 삶에 주체성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무례한 어른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정보력과 기술력으로 보란 듯이 한방 먹일 줄도 안다. 어른들에게 ‘요즘애들은 다 그런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쌓아왔던 억울함과 분노는 조용하고 우아하게 해소하고 갚아주기도 한다.
작가는 89년생이고 보수적일 수도 있는 언론계에 몸담으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 지점을 살아가는 작가의 삶에 나는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사회 초년생이 아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직업인의 관점에서 삶을 관조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내 생각의 흐름을 맞추는 것이 편안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기도 하다. 80년대 초에 태어난 나는 밀레니얼 세대쯤일까? MZ세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나의 윗세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경계에 선 나는 이 책을 고개를 끄덕이며 읽기도 하고 내 삶의 신념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내가 어릴 때는 세대를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ㅇㅇ세대로 명명되고 분석대상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과 그 위의 세대. 그리고 나와 생각이나 생활방식이 비슷한 세대와 그 위의 세대. 세대 간의 이해는 가능하지 않다는 듯이 그저 그렇게 분류하고 분리해버리는 것이 간편한 일이었다. 그러나 '꼰대'라고 불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연배로 진입한 나는 나의 아랫 세대와 나의 윗 세대를 아우르는 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으로서 나의 현재가 옳다고 믿는 나의 신념과 사회가 말하는 위, 아래 세대를 구분 짓는 일반적인 관념들에 끼인 세대라고 느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세대의 다름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 대한 관점에서 책을 읽어나갔지만 책을 덮고 나니 이 책은 세대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세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고와 생활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자는 생각을 열어주는 젊은 사람다운 에세이이기도 하다. 세대 간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그렇지만 너무 재밌게 읽은 지금 현재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요즘 세대가 말하는 자신의 행복과 삶을 대하는 주체성에 대한 자기 성찰을 하게도 하고, 앞으로의 나의 삶을 어떻게 영위해 나가야 할까 수없이 나를 안달복달 했던 내면의 번민을 해소하는 소화제 같기도 한 글이었다. 가볍게 들었던 이 책이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유쾌한 지침서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달달하거나 포근한 말이 아닌 건조한 문장 속에서도 과녁을 꿰뚫는 화살과 같은 통찰과 위로의 말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