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관 을유세계문학전집 115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지음,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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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을 좋아한다. 명예, 사랑, 자유와 같은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닌 그냥 죽자~~ 하는 러시아 문학이 좋았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읽고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느낌만 남고 내용은 대부분 까먹는 '느낌독서'를 하는 나라서 러시아문학이 잘 맞았는지도 모르겠다.(그렇다고 많이 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한다.) 최근에 고전읽기 모임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아직 1권만 ㅋ-곧 2권은 읽을 것임.)읽었고, 문학동네 독파 멤버쉽을 통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이것도 아직 1권만 ㅋㅋㅋ곧 2, 3권도 읽을 것임.)을 읽었고 며칠 전 을유문화사에서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니콜라이 고골의 [감찰관]을 읽었다. 위의 두권은 방대한 두께 때문에 몇번이나 완독을 실패했던 책이었지만 [감찰관]은 10여년 전 읽었고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책을 재독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 하는데 생각이 많고 말이 많고 읽고나면 '죽겠다~죽겠다'하며 자신의 내면에 몰입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힘들어지곤 한다. 톨스토이는 많이 접해보지 않았지만 시대와 관계와 상황과 같은 배경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많고 넓어서 내게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인물들이 갖고 있는 이상향과 개인의 행복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고골의 책은 내가 읽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마도 고골이 작품을 창작한 시기가 그들보다 빨랐고 러시아의 감정문학이 발달하기 전, 리얼리즘이 유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배경에 대한 묘사는 사실적이고 인물에 대한 설명은 직설적이다. 그리고 사건은 풍자적이면서도 해학적이다. 그러나 읽고 나면 인간본성에 대해 아무런 포장 없이 해체해 버리는 듯해서 뜨끔해지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아야 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건 러시아문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꼴랑 몇 권 읽은게 전부인 나의 생각일 뿐이다. (세 작가 다 좋음)

책은 <감찰관>, <결혼>, <도박꾼> 세편의 희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편의 희곡 모두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를 속고 속이는 일종의 소동극을 그린 듯하다. 내가 관극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지라(못즐기고 있다는 말이 맞을 듯 하다. 흑흑), 그리고 산문에 익숙한 독자라 희곡을 읽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들을 이해하려면 대사를 실감나게 읽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과장되고 익살스러운 대사들에 스며들기엔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도 잠시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우스꽝스럽지만 정곡을 찌르고 극적 효과를 위한 과장들은 오히려 상황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며 작품의 세계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감찰관>의 첫 장을 열면 '제 낯짝 삐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 - 속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글귀라고도 할 수 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부패하고 어리석고 탐욕스럽다. 시골 마을의 시장과 관료들, 지주들과 같은 '가진자들'은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대도시의 호화로운 삶을 갈망한다. 이렇게 부조리하여도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나름대로 평탄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도시에 감찰관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흘레스타코프'라는 한량을 감찰관으로 오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들을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불안감과 그들 사이에 생긴 균열이다.

본인에게 주어진 삶에 안주하고자 하는 욕망, 더 안락한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비열해지는 태도, 다른 사람들에게 군림하고자 하는 오만함,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태도들은 비난하고 있지만 우리의 삶에서 떨쳐지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학작품을 통해서 꾸준하게 이야기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찰관>도 발표된 시기에 부조리에 대한 거침없는 까발림과 현실 비판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의 환영과 보수계층의 비난을 동시에 받게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무언의 장면 씬. 모든 등장인물들이 굳어 버린 듯 멈춰버린 장면은 그들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 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극의 끝이란 마치 없는 것처럼.

<결혼 -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2막극>
결혼이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 부제가 이 희곡의 성격을 짐작케 해준다고 생각했다. 중매쟁이가 각각의 조건을 내건 배우자들을 소개해주고, 신부감과 신랑감들은 그 조건들을 저울질하고 그 것들에 집착하는 것. 결혼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회피하는 주인공 보드콜료신에게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느껴지고, 등장인물들에게 애잔한 마음도 느껴졌다.
중매쟁이로 나선 코치카료프는 정작 결혼생활에 대해 혐오하고 있고 극의 마지막, 포드콜료신이 결혼 직전 도망가는 것은 이 결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는 것인가, 혹은 현실의 결혼 절차나 결혼생활에 대해 비판하려고 하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포드콜료신의 독백. 역시 결혼은 안하는 게 잘하는 건가.
결혼 직전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망간 포드콜료신을 보고 느껴지는 바는 조금 다르지만 앨리스 먼로 여사의 단편 <아문센>이 생각났다.

<도박꾼 -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영화 [타짜]가 생각났다. 서로를 속고 속이는 도박꾼들의 말과 행동들, 큰 그림을 위한 기초작업들. 읽으며 화가 나다가 마지막에 한숨이 나왔다. <감찰관>과 <결혼>보다 더 진지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는데 이중사기를 당하는 이하레프를 이해하기도 동정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인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이중성과 자기기만에 대해 더 감정이입이 되어서 <감찰관>도 좋았지만 나는 <도박꾼>을 더 몰입하며 읽은 것 같다.

최근에 책이 잘 안 읽혀서 힘들었는데 정말 오랫만에 책을 펴고 금새 읽어치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극을 못하고 있지만 오랫만에 좋은 극을 본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입체감을 갖고 나의 머릿속에서 소리와 동작으로 메세지를 전달해 준 것 같다. 내가 하는 '느낌독서' 이번에도 제대로 잘~ 했다.

고골의 새 책이 나온다. 11월 10일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읽고 싶다.을유문화사에서 펴낸 고골의 초기단편집인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와 후기작품 [죽은 혼]은 곧 구입해서 읽어야 겠다. 좋은 책 내주시는 을유문화사 최고.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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