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존재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관계를 맺는다. 어머니와 맺어진 첫 번째 인간관계는 감정교류를 통한 정서적인 관계의 시작이다. 그 단단한 시작 이후로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 등 인간관계를 비롯해 사물, 자연과도 상호작용을 하며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이와 같은 수많은 관계 맺음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한다.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 물리적 필요들을 나누기도 하고 소속감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며 다양한 관계의 가지들을 뻗어나간다. 그러나 관계를 지속할수록 서로 간의 차이와 다름을 알게 되고 이로부터 갈등은 초래된다.이때 우리는 ‘인간성’이라는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간 본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인간성을 동물과 구별할 수 있는 다른 점에서 찾아보려 했다. 본능에 지배되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 그것은 배려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회화를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타인들과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나는 인간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과학이 발전하고 편리함과 신속함을 지향하는 책 속의 세상은 인간에게도 더 높은 능력을 요구하고 능률을 중시한다. 이 곳에서는 인간마저도 도구화되어 급기야 ‘향상된 인간’을 만들어 낸다. 향상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다. 사회적 위치에서 추락하지 않기 위해 건강을 위협받으면서도 '향상'을 선택하는 이곳은 친구마저 인공적으로 생산해서 소비되는 존재로 창조한다. 그 곳에 대한 반발심이 일어난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사회의 일원이 된다면 모나지 않은 구성원이 되기 위해 '향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씁쓸하다. 그 모순된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를 위한 변명을 고민한다. 과연 이런 곳에서 인간다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인간은 본인과 연결된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늘 ‘인간적인 면모'를 갈망한다. 인공으로 창조한 친구에게마저 역설적이게도 공감능력을 요구한다. 이해받고 보호받으려는 욕구에서 AF(ArtificialFrind)가 탄생한 것이다.<클라라와 태양>에서 화자는 AF인 클라라다. 클라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인간의 관찰자가 된 독자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된다. 인간은 감정과 생각의 소통을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소모품으로 변질되어 가는 듯한 인간과는 소통에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고, 인공적인 친구와의 소통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필요에 의해 맺어진 이 관계는 사실 소통이 아니다. 인간에게만 유용하고 합리적인 관계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AF에게서 전달받으려는 인간적인 정서에 반하여 인간이 전달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마주할 때 우리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오랜 시간 조시를 관찰했던 클라라가 ‘조시를 이어가는 것은 조시 안에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성이란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배려와 사랑, 여러 가지 감정교류를 하게 될 때 나와 다른 사람의 특별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특별한 누군가, 그와의 관계에서부터 우리는 존중과 포용을 동반한 감정적,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게 되고 ‘인간성’을 실현하게 될 수 있다.AF인 클라라에게 태양은 에너지원이다. 클라라는 조시에게도 태양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태양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밝음과 따뜻함을 준다. 태양의 포용력은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동등한 지위를 부여해주고 우리는 세상의 일부가 된다. 이런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이라는 본성이 발현된다. 우리는 클라라가 조시를 구하기 위해 배려와 헌신이라는 가치를 품고 세상이 비롯되는 근본인 태양을 찾아가는 힘든 여정을 응원한다. 클라라의 그 여정은 타인과 나의 관계 속 특별함을 찾아가는 여정과 닮았다. 우리는 인공의 힘이 아닌 영원하고 선한 존재인 태양을 찾아가는, 마치 인간다움의 중핵으로 다가가서 문제를 극복하려는 결말에 희망을 갖게 된다. 인공지능 친구 클라라의 눈과 생각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