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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눈을 감고 밤의 정서를 생각해 본다. 어둠이 주는 안정감, 안락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잠시다. 나의 시선을 가로막는 어둠에 당황한다. 어둠은 상처 받은 나를 감추어주지만 동시에 다른 것들로부터 나를 단절시킨다. 그때부터 나는 밝음을 갈구한다. 아마도 처음의 안정감이란 빛의 세계를 피해 도달한 어둠에서 잠시 느낀 편안함일 것이다. 어둠에 정착한 나는 빛을 찾으려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안도할지도 모른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울었고 많이 생각했다. 책을 덮고 표지의 제목을 다시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밤의 이미지, 그 어둠으로부터 발화된 아득함과 두려움에 '밝은'이라는 그 모순적인 형용사가 사용됨으로 나의 마음을 둘러싼 무거운 공기가 굴절됨을 느낀다.
책은 100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역사와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면 읽기 전부터 어쩐지 고되고 힘든 여정일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여성으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것에 어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해야 했는지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 역사의 면면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나의 엄마의 삶을 알고 있고 할머니의 삶도 자세하지는 않아도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밝은 밤]은 전쟁 중 위안부로 끌려갈 뻔했던 백정의 딸 증조모, 한국전쟁 중 중혼을 당한 할머니,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엄마,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한 주인공 지연의 역사를 담담하고 고요하게 그려낸다. 할머니의 이야기로 전달되는 증조모와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는 지연을 통해 전달하는 현재의 상처들과 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살아온 시간의 틈이 있지만 출신이나, 살아온 환경으로 인해 희생들을 감내하고, 결핍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강요된 삶이었다. 그 삶 자체가 커다란 상처이고 견디기 힘든 무게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자신에게 닥친 고된 상황에 초연해질 수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이 있었고 그녀들의 곁에는 그 슬픔과 고난을 이겨낼 힘을 주는 우정이 있었다. 증조할머니(삼천이)에게는 새비가 있었고, 할머니(영옥)에게는 희자와 명숙 할머니가 있었고 엄마에게는 명희 아줌마가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 지연에게는 지우가 있다. 위태롭고 힘든 가운데 그녀들이 나누는 정서적 연대의 힘은 삶에의 의지를 굳건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밝은 밤]에서 지연이 본인의 상처를 직시하고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을 그려보며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지연은 자신의 근원적인 불안을 마주했다. 할머니도 지연과 자신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마음속에 담아온 감정들을 꺼내 보인다. 이렇게 그들은 100년의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그 중첩된 세월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함께 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게 된다.
삶은 퍼즐과도 같다. 복잡할 것 같은 퍼즐의 조각들을 맞추어 가며 삶의 의미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거대한 역사의 굴레 안에서 개인의 역사도 대를 이어가며 흐르고, 그것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알고 이해하는 것 역시 내 삶의 퍼즐을 구성하는 수많은 조각들 중 일부가 아닐까. 퍼즐의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 끼워 넣을 때 시련과 고난의 조각 옆에는 우정과 사랑의 조각이 맞물려 있을 것이다. 내 옆의 누군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 늘 그것이 복잡할 것 같던 삶을 정돈하는 중요한 조각이었다. 이렇게 퍼즐의 조각들을 맞추어가며 나의 근원을 알고,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고, 내 삶의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