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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평점 :
책의 리뷰를 쓰려고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니 표지의 그림이 보인다. 책을 읽기 전에 이 그림을 보았을 때는 아마도 아이 뒤편의 어두운 숲 속을 보았던 것 같다. 지금은 어두운 숲에서 빛을 향해 달려나오는 아이가 보인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아동학대 뉴스에 분노하고 드라마의 자극적인 소재를 비난하면서도 그 아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아이의 입장에서 그것들을 표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외적인 상흔들에만 집중한 텔레비전의 이야기들은 눈 앞의 문제들만 짚어주며 흘러갈 뿐이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완벽한 아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정말로 완벽한 아이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모드라는 아이가 잘못된 양육방식으로 ‘완벽한 아이’를 만들어내려는 아버지에 의해 집에 갇혀 사육되는 삶을 살았던 때를 기록한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길러졌으니 사육이라는 단어가 맞을것 같다.
아버지가 아이를 키우면서 강조하는 것은 아이가 '선택받은 아이'로 '인류의 부름'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초인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담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훈련을 받아야한다. 지하실에서의 죽음의 명상, 깜깜한 밤 혼자 정원으로 나가는 담력훈련, 어린시절부터 강제로 마셔야 했던 술,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진 노동과, 교육과 훈육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학대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사람이나 사건, 장소들의 기억을 하나씩 펼쳐놓으며 모드는 자신의 상처를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들은 아름답지 않은 기억이지만 그것들을 견디어내는 모드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문장들에 안도하며 글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모드에게 동물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체온을 나누는 것은 사랑의 기쁨을 안겨주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눈빛과 체온의 주고받음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가늠해본다. 그리고 세상과 고립되었지만 그 세계와 연결시켜줄 책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모드의 마음과 생각은 그 집에 갇혀있지 않고 점점 확장되어 갔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줄 음악, 그것을 즐길 수 있었음은 강인함을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부모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들의 행동에 이유가 있을 것이며 책을 읽으며 그들에게 설명받길 원했다. 왜 모드를 그렇게 키웠어야 했는지... 이 책은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전적으로 악인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모드의 아버지 디디에는 본인도 아버지에게 정서적인 학대를 받은 듯하고,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는 잘못된 관념들을 낳고 그것은 초인을 키워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 것 같다. 딸은 자신의 소유이고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킬 도구가 되었다. 이런 계획들이 디디에에게는 본인의 상처들을 치유할 것이고 자신이 초인을 키워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될거란 강박에 사로잡힌 것인가. 처음에는 디디에를 이해해보려 애썼지만 디디에가 늙어 갈수록, 모드가 커 갈수록 그의 행동에는 일관성이 없었고 그의 생각은 모드의 눈에도 망상에 불과해 보였으며, 그것을 실현시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복종하는 모드와 자닌의 모습만을 바라는 것 같았다. 정신적인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 뿐 그에게 인간적인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니 왜 초인으로 키워내는 자식이 '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계획부터 딸이었어야 했다. 아들이었다면 아마도 아버지를 결국에는 넘어설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인지 모드의 엄마 자닌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닌도 학대 받아온 아이이며, 자라면서 세뇌 당한 것은 자신의 존재이유가 디디에의 딸을 낳고 키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닌을 나와 같은 엄마로 여겨 비난의 시선을 보내다가도 어른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또다른 아이라는 생각을 하면 자닌에게 한없는 동정을 보내게 되었다.
p.264
"네 아버지 딸이라고? 그래, 아주 좋겠구나. 내가 여기 이 집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게 전부 너 때문인데! 전부 네 탓이라고!"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말로 분출하며 모드에게
내뱉는 이 말들에 모드가 받을 상처도 느껴졌지만 6살때 가족과 헤어져 디디에에게 딸을 낳아주고 초인으로 키워주는 임무를 위해 길러진 자닌의 슬픔도 감지되었다.
'식인귀의 첫 희생자였던 나의 어머니에게'라는 헌정의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그곳을 탈출한 모드와는 달리 6살 때부터 디디에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어머니를 향한 이해와 동정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드가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되고 그로 인해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되는 데에 비해 자닌은 고통받은 세월을 치유하거나 앞으로의 삶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 아팠다. 자신의 자식인 모드는 자닌에게 감옥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김영하 작가님이 추천하는 글에서 자신을 가두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셨다고 했는데 나는 그 생각보다 먼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육이나 양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양육자라는 역할이 내게 지금 가장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페르세폴리스’의 마르잔의 훌륭한 부모처럼 아이를 보호해주고 존중해주며 한사람의 인격으로 대할 수 있게 되길 바라지만 나는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이들을 내게 맞추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에게 '완벽'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것 같다. 어두운 숲을 헤치고 나온 모드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 댓가 없는 ‘완벽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감사의 말’에 감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집을 나온 이후 모드의 삶은 사람과 사랑이 함께 할 것 같아 다행이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님의 인스타에서 추천도서 피드를 보고 꼭 읽어보고 싶었고 복복서가의 첫번째 독자 이벤트에 당첨되어 내 품에 오게 되었다. 좋은 책을 선물 받음에 기쁘고 복복서가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