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건의 전모를 내게 설명하며 덧붙인 사토의 이 말에 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너무나 큰 것이어서 그 말을 듣기 이전의 밝은 세계에서 내가 영원히 추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다음은 믿을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한 어둠의 세계, 나 자신도 신뢰할 수 없는 밤의 세계였다. 언젠가 잡지에서 사계절이 어떻게 생겼는지 읽은 적이 있었다. 그 글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우주의 저편에서 별 하나가 날아가다가 우연히 지구와 충돌했고, 그 잔해물들은 지구 주위를 선회하다가 점차 뭉쳐지면서 달이 됐다고 한다. 이 충돌로 인해 지구는 남북 축이 23.5도 기울어지게 됐고, 결과적으로 계절의 변화가 생겨났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오래전 어느 별과 지구의 충돌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런식으로 사토의 말이 죽을 때까지 내게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남겼다는 건 분명했다.]

그렇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계기로 한 번 세상을 고쳐보게 되면 모든 게 다 바뀌어버린다. 어떤 사건이,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충격이 내 가슴을 강타했다.
이 소설을 검색해보니 2000년대 최고의 한국 문학으로 뽑혀 있었다.(68명의 평론가가 뽑음) 우리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기도 하고, 김연수 작가가 잘 쓴 작품이라고도 평이 되어 있었다. 일단, 기본적인 소설의 토대가 된 역사적인 사실은 1930년대 간도 지역에서 수많은 조선인 항일운동가들이 민생단과 관련된 일본 첩자라는 혐의를 쓰고 체포, 살해된 사건이다.(민생단 사건) 민생단은 간도 지역에서 조선인 자치를 주장하면서 일본의 만주침략을 옹호하던 친일 조직이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은 단체를 빌미로 수 많은 조선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이다. 밤은 노래한다를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아마 역사책에서 배웠을텐데. 역사적인 부분은 이쯤해두고 김연수의 소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김연수의 작품은 읽기가 두렵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정독 3-4번이 넘어갈 때 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흡수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경험을 갖게 해주었다. 아직도 책의 표지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 더불어 소설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했다. 조그만 그 책에서 대단한 플롯을 집어넣다니!!! 그래서 김연수의 `다른` 작품을 읽기를 주저했다. 보통은 여행갈 때 고르는 책은 여러번 곱씹어 읽어야하는 책으로 산다. 그리하여 큰 맘 먹고 김연수 작품에 도전! 2011년에 필리핀 여행을 떠나면서 산 책은 `7번 국도 revisited`..사실은 이젠 기억이 나질 않는다..(그만큼 뭔가 없었다) 시간은 다시 흘러 2015년,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김연수 작품을 주제로 논문으로 쓴다는 친구를 만나 다시 김연수의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김연수의 작품의 키워드를 잡으면 `사랑`이다. 처음은 항상 사랑으로 시작하며 사랑으로 끝이 난다. 우리 인생은 사랑이 없으면 진행되지 않는다. 나는 사랑이 등장하는 소설이 참 좋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플롯은 대단하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로 시작하는 정희의 편지는 책을 한 호흡으로 읽게 만든다. 절대 다 한번에 보여주지 않는다. 퍼즐 맞추듯 서사를 맞춰가야한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읽거나 점심시간에 읽었던 부분들은 퍼즐이 잘 맞춰지지 않는다. 한 자리에서 쭉 읽어야한다. 혹은 한 번만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서사를 맞춰가는데 중요한 건 사랑이었다. 그 외에도 김연수 작품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단어들은 [시, 사진, 역사]이다. 아마 김연수는 시를 쓰고 싶어했고, 사진을 많이 찍을 것이고, 좌파의 성향이 강한 작가일 것이다. 하루키에게서 발견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잡히는데, 김연수의 작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렇게 단어들을 뽑아내는 것은 건방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연수 작품을 다시 읽을 용기?가 생겼다. ˝어떤 계기로 한 번 세상을 고쳐보게 되면 모든 게 다 바뀌어˝ 버리듯!
(하지만 여전히 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최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