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 - 엎드려 울고 싶을 때마다 내가 파고드는 것들
한수희 지음 / 웅진서가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단락 이상 써버렸는데 다 날라가버려서 더 이상 쓸 힘이 나질 않는다. 중략 상태로 가야겠다..

인쇄판을 보니 2015년 7월 1일이다. 읽으면서 제일 반가웠던 점은 최근에 내가 본 신간 영화들 + 책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다. 고전에서 느끼지 못했던 이 반가움이란!! 게다가 좋아하는 영화와 좋아하는 취향의 책들이 꽤나 많이 있어서 좋았다. 사실 처음에는 `연애담인가보다.. 뭐 그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늘 끝없이 하고 있으니 잘 됐다.` 싶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인생 얘기들이다. 누구나 경험하고 누구나 겪고 있을 법한 이야기들의 나름 탈출구. 이 작가만의 방법들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이별을 겪고 7월과 8월에 미친듯이 쿠시네마트랩을 그렇게 다녔었는데 이별을 경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내려고 그랬던거구나 싶다.

# 사랑에 실패했는데 왜 연애가 아닌 심리에 관한 책을 고르는 걸까? 이제 우리는 사랑의 문제가 다른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 제대로 서지 못하면 또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임을 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좋아했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라는 영화를 언급한다. 이동진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보고 나서였는데 신형철의 평론에도 등장했던 것 같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 결핍에 대한 깨달음. 그것이 `장애`라는 은유를 통해 영화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나도 나의 결핍을, 상대의 결핍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함께 단단해질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차치하고 작가는 어마어마한 말을 던진다.

# 그러니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내 인생을 제대로 살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말씀.

작가는 콘돔을 챙긴 인도 여행을 떠난다. 읽으면서 계속 피식피식 거렸다. 다섯의 남자를 만난 이야기하며, 인도 여행에서 자신을 돌아봤을 때 참 솔직하기도 하고 유머감각 넘치게 표현해낸 것이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앞으로 여행은 이렇게 해라! 라는 식의 전언이 써 있는데 난 그러고보면 내 베프랑 너무 재밌게, 아니 재밌다는 표현으론 부족하게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는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 같다. 여행을 갈 땐 예쁜 옷도 한 벌씩 챙겼고, 나를 즐겁게 해 줄 책은 당연히 있으며, 생각을 쓸 노트는 언제나 챙겼다.(노트를 글로 채운 건 유럽에서 편지로 꽉꽉 채운 적과 태국에서 책을 필사한 적. 2번뿐이네) 결혼하는 내 베프랑 다시 미친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리고 여행은 아니었지만 20대 중반에 앞 뒤 가리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 과감하게 연애를 시작해 본 것으로 어쩐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8월에 `비긴 어게인`을 보면서 그만큼 나를 위로해 준 영화가 없었는데, 한수희 작가도 그걸 콕 집어 이야기 한다.

# 그레타에게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이런 거다. 그녀는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기타를 치며 자신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 순간순간 울먹이면서도 몇 번이고 거듭해 노래한다. 바람을 피워 나를 차 버린 남자에게 너를 정말 사랑했노라고 거듭 말하는 데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걸까? 나를 모욕한 사람, 나를 망친 상처, 나를 버린 세상에게 그럼에도 너를 정말 사랑했노라고, 최선을 다했노라고 떳떳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견고한 자존감이 필요한 걸까?

나는 아직도 후회중이다.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도망친 것이었을까? 있는 그대로 알고, 상처받을 만큼 받고, 떨쳐버려야하는 문제였을까. 진실을 알아야 한다, 몰라야 한다라고 친구와 논쟁?한 적이 있었는데 난 그저 무서워서 도망친 것 같다. 전력 질주하여 삶의 품으로 뛰어들기에 아직 약했던 것이다.

요즘은 클라이밍에 미쳐 있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고 풀었을 때의 희열은 나를 살아가게하는? 에너지가 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인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분들이다. 김연수 산문집에서는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다른 누군가를 이기지 않는다면 결국 패배자가 되는 것이 스포츠`라는 편견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나는(나에게 있어서) 클라이밍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구와 비교할 것도 없고 내가 못 풀던 문제를 풀어낸다면 그건 나를 이긴 거다. 경쟁심으로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진정으로 즐기진 못할 것 같다. 요즘 매일 운동을 하고 있어서 내 빨래는 전부 운동복이다. 물론 더우니 일상복도 매일 빨아야하지만.. 땀에 흠뻑 젖은 운동복을 벗을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환풍이 되지 않고 선풍기 하나에 의존해 실내 암장에서 지구력을 한 적이 잇다. 그때 흘린 땀은 내 티셔츠를 전부 젖게 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물론 내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은 지하철에서 불쾌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한수희 작가에게 들킨 것 같다.

# 책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건 여러 사람들과의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아니라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다 걷는 밤길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던 것,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인생을 떠올린다. 나라면 어땠을까?

술을 참 좋아하는데 사람들하고 그런 긴밀한 관계를 맺을 때 더더 좋은 것 같다. 저번주 월요일에는 새벽 5시까지 클라이밍하는 언니와 수다를 떨었는데 그런 기분이었다. 언니라는 책을 읽고 서로의 인생을 이해했던 것. 앞으로도 나는 더 많은 책들을 읽게 될 것 같다.

오늘은 너무 더운 날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가 수영장이 너무 가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아서 가게 되었다. 다녀오고 나니 주문했던 책이 도착해 있었다. 토마토 주스를 갈아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살랑살랑 때리며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내 일상과 생각들까지 이렇게나 길게 바로 리뷰를 쓰고 있다. 수영장 락스 냄새와 빌려쓴 랑콤 바디샴푸의 냄새가 섞여 미묘하게 너무 좋아서 계속 이 상태로 읽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아까운 시간들이 자꾸 흘러간다. 오늘은 꽤나 행복하게 잘 보낸 것 같다.

여기 나온 책들과 영화들은 아끼지 말고 봐야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디언밥 2015-08-28 0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운동 하나 해야하는데 게을러서.. ㅜ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