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이석용 지음 / 청어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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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지도, 들을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소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소년의 목에는 언제나 작은 수첩이 걸려 있다. 첫 페이지에는 '저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입 모양을 보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을 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보여주어야만 하는 문장, 그게 소년의 존재를 유일하게 알려주는 메시지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소년은 자신의 처지를 불행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소년의 고민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었으니까. 그러나 혼자서 생활하기에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기에, 이모의 집에서 살게 된다. 장기출장으로 집을 비운 이모를 대신해 초등학교 3학년인 이모의 딸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 소년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소년은 꽤 특이한 부업을 시작한다.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는 아르바이트, 일종의 일반인을 위한 파파라치인 셈이다. 의뢰인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소년의 내면 세계도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의 일상을 찍어주는 것이 과연 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먼발치에서 관망하고 싶어한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하여…

《파파라치》는 청각장애인 소년의 사진기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소년을 비롯한 주변인물의 심리까지 들여다보고 묘사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년의 행동거지를 중심으로, 소년에게 일을 의뢰한 사람들의 움직임과 심리까지 유추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법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와 지식 없이 시작한 소년, 게다가 청각장애를 가진 소년이 찍는 사진기의 초점을 무엇을 향하게 될 것인가. 소년은 무료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청각이 차단된 공간에서 오로지 촉감과 마음에 의지해서 피사체를 새롭게 해석하여 접근하는 것이다.

 

 

 

"저녁 무렵 길도는 몇 장의 사진을 아기 엄마에게 보여주었고, 아기 엄마는 감격한 나머지 모니터를 와락 끌어안았다. 사진 속의 아기는 콧잔등에 앉은 파리를 보느라 눈이 가운데로 몰려 있기도 했고, 한쪽 눈을 씰룩이며 얼굴을 일그러뜨려(아마 이때 아기는 용변을 보지 않았나 싶다) 독재자의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사진에는 뒤돌아 있는 엄마를 향해 뭔가 진지한 얘기를 하는 듯 손짓과 표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아기 엄마는 자신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아기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카메라를 가슴팍에서 내려놓을 줄 몰랐다."(p.205)

 

"그냥 제 사진을 많이 찍어주세요. 혼자 있는 모습을 담아주세요. 그뿐입니다."

소년의 사진기는 우리가 가만히 귀를 기울여야만 발견할 수 있는 모습만을 찍어낸다. 소년에게 자신의 일상을 솔직하게, 꾸밈없이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하루종일 일과 사람에 치여서 스스로를 돌볼 여유조차 없는 우리에게, 지금 그 삶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잠시 멈추라고 당부하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소년이야말로 제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고, 제 삶에 몰입할 수 있는 축복받은 사람이 아닐까. 《파파라치》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렇게 해석해본다. '자신을 치유하는 최고의 방법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감싸 안는 것이다.' 구태여 자신을 사치롭게 치장하여 드러낼 필요가 있으랴. 이미 존재하는 그대로 우리의 가치는 절정에 달하여 찰나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데 말이다. 소년이 찾아준 삶의 기적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는 충분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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