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말의 수기
마광수 지음 / 꿈의열쇠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창조적 불복종'이라는 말을 일종의 화두로 삼고서 지금까지 여러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창조'란 반드시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반항과 불복종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창조를 시도한 사람들은 기존의 진리나 윤리 등에 대해 '삐딱한 눈길'을 보낸 사람들이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했지만, 나는 거꾸로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라고 말하고 싶다. 고정불면의 진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유연성 있는 사고방식을 갖고서 모든 것들을 대할 수 있어야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아니, 고정불면의 '진리'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본문 중에서

 

창조적 불복종, 예술은 창조성을 배제하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우주만물을 통틀어 그 무엇일지라도 광활한 상징성을 전제로 하는 표현의 자유를 지닌다. 인간과 예술의 관계, 그 시초를 설명하자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를 행하는 자를 두고 예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사회적 규범에 철저히 제약받는 예술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는 왜 멈추지 않는 걸까. 그렇다고 논리정연하게 구성된 예술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마광수라는 작가는 완벽한 일탈을 시도한 셈이다. 그의 작품 『즐거운 사라』는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문제작이 되어버린 그 시점에 한 사람의 인생이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그래서 <미친 말의 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창조적 불복종'을 과감히 시도했다는 포부를 내비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의 수필집이라고 보면 된다. 일종의 변명 아닌 자신의 진실성을 다시 한번 입증하기 위해서 <미친 말의 수기>를 출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도 참 많았고 자신의 사상에 대한 자의적인 질책과 신념이 뒤섞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입장이라서 누군가의 문학적 가치관과 사상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디까지나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자유라고 생각하니까.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인간의 정서를 혼란스럽게 헝클어 놓았을지라도…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 행해져야 한다면, 이 땅의 모든 작가는 자신의 간절한 욕구를 마음껏 분출하지도 못하고 일정한 선에서 그치고 머물러야만 한다는 것인가? 물론 마광수라는 사람이 지닌 사상이 보여준 결과물-그것을 결코 결과물이라 한정지을 순 없겠으나-을 두고 비정상적인 항목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사회적 범주 속에 속해있는 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내가 새로 소설이나 시집을 내면 거의 모두가 <19금禁>이 된다. 그러니 출판사들이 나를 좋아할 리 없다. 문단에서 '왕따'이기 때문에 빽줄도 없다.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 지금 내 나이 60. 인생의 종반기, 아니 종반기의 문턱에 접어들었다. 더 비약적이고 기발한 '변태'를 '창조'해내고 나서 죽어야만 여한이 없을 터인데, 한국이라는 사회 여건이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 억울하고 안타까워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본문 중에서

 

<미친 말의 수기>를 읽고 나서 그 어떤 말로 결론을 내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마광수라는 사람이 지닌 가슴 속 응어리를 잠시 들어본 셈이고 그 무게의 많고 적음을 가만히 헤아려 보았을 뿐이다. 옳고 그름을 논한다는 것은 하나의 형식에 얽혀 있음을 뜻하는 것일테다. 자신이 '한국적 상황'에서 새롭게 창조해낸 것은 바로 '성문학'에 대한 이론과 창작을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라 말하는 마광수, 그의 사상과 작품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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