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한 그대 詩들었네
파란달 지음 / 인디펍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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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여행을 즐기다보면 마음을 쿡 찌르거나 찌릿 전기가 통하는 듯한 시들을 발견할 수 있다. 파란달의 시도 그렇다. 그대의 불도장, 육감 된장국, 인생 맛 젤리, 투명한 가족, 촌철살인 N행시 등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총 200쪽의 시편을 읽는 동안에 지루함은 전혀 없었다. 흐름의 방해를 받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휴일이 고마울 정도다. 파란달 시인의 시를 읽는 내내 웃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며 감정이 요동쳤다.

요즘 현대인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시들시들 앓는 사람이 많다. 그런 이들에게 시로 물들여 한 시름 놓인 자리에 꽃물 들었다고 표현한 작가의 감성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N행시를 보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특별세일]은 애교스럽고 [어우동]은 풍류의 멋이 가득하다. [탄산수]의 협박은 귀엽고 [화장실]은 안쓰럽다. 그런가하면 [은행 털기][소금꽃], [다리 저는 메트로놈]은 찬찬히 읽을수록 더욱 가슴이 아릿하고, [서울대]의 위로는 진솔해서 좋다.

하지만 작가의 속내를 제련해서 가장 끈끈하게 풀어낸 감성의 잔칫상을 맛보려면 4장 투명한 가족 편을 봐야 한다. [할미꽃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서는 남은 이들을 위해 정작 당신의 슬픔은 꾹꾹 눌러 삼키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냈다. [투명한 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의 고달픔을 내색하지 않고 웃음으로 덮어두는 애틋한 가족 사랑이 가득해 심금을 울린다. 같은 장에 수록된 [어머니][생선가시]도 군더더기 없는 수작이다.

시에 걸맞은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누가 그렸는지 파란달 작가의 시 만큼 다감하고 따뜻하다.

파란달 시인의 시집을 읽은 평을 한 줄로 표현한다면 나는 시의 웃음과 눈물이 톡톡 튀는 감성의 잔칫상 같은 시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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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 정호승의 새벽편지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해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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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아닌 가을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폭우가 되어 쏟아지던 10월 중순 어느 날, 나는 정호승 작가의 산문집 두 권과 시집 두 권을 껴안고 여수 시립 도서관을 찾았다. 참으로 행복하게 그 책들의 저자인 정호승 시인의 강연회가 있기 때문이다.

  저녁 540KTX로 도착했다는 그는 청중들과 똑같이 빗속을 뚫고 달려와 약속한 시간에 도착해 당신이 아니면 내가 없습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알찬 그의 강의는 벌써 세 번째 읽고 있던 책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하고 활자에서 느꼈던 감동을 더욱 심화해 깊은 공감을 느끼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사랑에는 책임이 따르고 고통 없는 사랑은 참다운 사랑이 아니며 모정을 통과하지 않고는 절대적인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다는 책의 요지를 전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덕분에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되새김하며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의 산문집 당신이 아니면 내가 없습니다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총 71편의 주옥같은 산문이 실려 있다. 한 편 한 편이 작가 특유의 다감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로 이루어져 있어 아무런 거부감 없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빼어남을 맛보게 된다.

 

  그의 산문집 제1부는 전남 완도 찐빵집 주인아주머니의 다정한 사연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 첫 산문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나에게 묻는다. 이어 내 인생의 스승 운주사 석불들에서 그 답의 방향을 제시하고, ‘가족도 희망이다에서 드디어 그 실체를 토로한다. 그리고 그리운 아버지의 손에서 내 가슴 깊이 묻어놓은 추억과 회한의 감정 폭탄을 터뜨려버린다.

  ‘아버지는 이제 삶이라는 여행을 끝내고 죽음이라는 여행을 떠나신 겁니다. 즐겁고 신나게 떠나세요. 배고프시면 가끔 짜장면도 탕수육도 사 잡수시고요.’

 

  ‘그리운 아버지의 손에서 나오는 작가의 혼잣말을 읽은 순간 나는 출렁거리는 마음의 파문을 막지 못해 그만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데 그 파문의 시발점이 된 말이, 삶도 여행도 죽음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짜장면이라는 것이다. 이는 내가 그 낱말을 사탕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친정아버지는 군음식과 주전부리엄마 말을 그대로 옮기면, 특히 사탕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도 줄곧 사탕을 챙겨 입에 넣고 줄곧 우물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겸연쩍게 웃으시곤 했다.

  그랬던 아버지가 꽤 오랫동안 중풍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첫 기일 때, 난 엄마의 눈치를 보며 아버지의 제사상에 사탕을 올렸다. ‘좋아하셨으니까라는 내 혼잣말에 엄마는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엄마가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가족들과 함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한 시간이 달팽이의 외유처럼 느릿느릿 흘러갔다. 나는 조류에 흔들리는 모래처럼 흔들거리며 올라와 내 마음을 헤집는 사탕과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졸였다. 그리고 비로소 삶과 죽음을 통틀어 여행이라는 말로 표현한 작가의 애틋한 마음을 손에 잡힐 듯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병상에 누운 채 어눌한 말투로 괜찮다고 연신 말하는 엄마의 거친 손을 잡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따스한 감촉에 안도했다 뒤늦게 울컥했다. 그다지 살갑지 않던 딸이라, 엄마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던 기억이 언제인지 모를 만큼 아득했던 것이다.

  그 순간 이 책의 한 대목이 가슴에 사무치게 와 닿았다. 그것은 바로 아직도 세뱃돈을 받고 싶다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근간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는 작가는 애써 담담한 필체로 세뱃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찾아 뵐 웃어른과 스승이 아직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적어놓았다.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사무치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도 나 역시 찾아뵐 스승과 웃어른 보다는 제자나 아랫사람이 훨씬 더 많고, 세뱃돈을 받을 사람보다 줘야 할 사람이 대부분인 나이가 되었다는 것일 게다.

 

  꽤 두꺼운 이 책에서 삶의 편린을 가지런히 엮어가던 작가는 마지막 산문인 새해의 눈길을 걸으며에서 드디어 인생의 목적을 밝힌다. 그것은 절대적인 사랑이다. 그는 인생의 의미를 사랑고통으로 압축한다. 그리고 고통이 함께하는 사랑이 진정한 삶의 의미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시 책의 처음으로 되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새들이 집을 짓는 이유와,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는 말과, 쌀에 아무리 돌이 많아도 쌀보다 많지 않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하기 위해서다. 또한 삶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지만 그 고통이 있기에 보다 나은 삶이 완성된다는 그의 말에 깃든 위안과 평화를 다시 한 번 맛보기 위해서다.

 

  이렇게 책을 두 번 읽고 책을 덮으려던 나는 문득 또 한 번의 독서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눈으로 찍고 가슴에 담은 그림자 책이었다. 작가의 주옥같은 글 사이사이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박항률 화가의 그림은 확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저 만의 아름다운 빛을 뿜어 내 마음에 말줄임표의 화인을 찍는 또 하나의 책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의 새를 따라 책의 맨 앞, 작가의 말로 다시 날아간다. 그러곤 비로소 빛과 어둠의 상관관계를 이해한다. 빛은 어둠이 없는 상태가 아니고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말과, 빛과 어둠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사랑의 관계라는 말을 이해한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비로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

 

  글과 말이 하나 된 소중한 시간을 보낸 나는 작가의 정성스러운 손 글씨가 몇 줄 더해진, 그래서 더욱 소중해진 책들을 안고 문을 나선다. 그리고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밤을 가르며 조용히, 아주 조용히 되뇐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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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메이션
장현정 지음 / 지식공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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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내가 장현정 작가의 ‘트랜스포메이션’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작가는 트랜스포메이션 카드를 한계가 없는 인간의 욕망과 도전의 상징으로 삼고, 트랜스포메이션의 영혼 속에 변환에 대한 작가의 의지를 담았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탈피하며 무한한 시공간의 차원을 열어 주었다. 또한 작가는 광활한 시공간을 무대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흡입력을 가진 스토리 전개로 독자의 시선을 잡아둔다. 그런 그녀는 마치 트랜스포메이션의 영혼처럼 독자의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속삭이며 독자를 매료시키는 또 하나의 이오스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래안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불타는 청년의 열정으로, 때론 노인의 노련함으로, 극한의 상황에서는 절대자의 카리스마로 독자의 마음을 잡고 놓지 않는다. 그는 강한 자에게 더욱 강하고 약한 자에게 더욱 약하다. 그러면서도 마음을 정하면 극한의 냉정함과 잔인함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가장 큰 신념을 위해 모든 가치를 버리는 단호함과 비정함을 보여 놓고, 새로운 것에 대한 애정과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추억에 잠기며 밤새 울기도 하는 그런 남자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지점토와 고무찰흙, 아이클레이 등 전혀 다른 재료로 하나의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지구 인간의 모든 유형을 버무려 새로 만들어 낸 인류의 복합체 같다.

 

트랜스포메이션의 영혼인 이오스의 선택에 의해 지구가 차원의 카오스에서 벗어나 예전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을 때, 작가는 또 하나의 균열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변환의 맥을 이어간다. 이오스가 생성한 중간 우주의 존재는 처음이되 처음이 아닌 처음과 태초의 처음은 같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깨끗이 지워버린 지우개 자국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적나라하게 흔적이 드러나는 것처럼, 이미 있었던 일은 아무리 지워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기에 새로운 변환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작가가 차원을 보는 관점도 흥미롭다. 그녀의 차원관은 생명의 생성과 번성 및 소멸에 관한 서양의 과학적인 사고와,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서로가 수레바퀴처럼 물고 들어간다는 동양의 윤회가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다. 모든 무생물적인 위해로부터 안전한 공간으로서 생명친화를 내세우는 5차원 설정에서는 세상을 보는 윤리적인 사고가 드러난다. 6차원인 레기아의 설정도 흥미롭다. 자신을 형성한 주인을 알아보기에 주인의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이 형성된다는 설정은 그녀가 집필한 6권에 달하는 판타지 소설에 녹아 있는 사상과 상통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런 세계에도 주인의 힘의 강약에 따라 변하게 됨을 끼워 넣음으로써 또 다른 변환의 의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개별차원은 또 어떠한가? 그것은 그녀가 영문 소설로 출판한 동화와의 접목을 보여준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그녀의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생성된 수많은 차원 중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까? 필자는 작가가 놓아버린 3차원의 또 다른 변환에서 파생한 어딘가에 있는 그곳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 작가는 주인공에게 그 말을 부여했지만 필자는 그 말을 작가에게 부여하고 싶다.

 

수많은 변환과 질주에 의해 차원은 거듭 진화해 마침내 차원을 마음대로 다루는 시대가 된다. 고차원의 인류가 저차원을 상대로 게임을 하듯 바꾸고 업그레이드하고 레벨 업하다 폭파되기도 하는 컴퓨터 게임 같은 세상. 그러다 로그아웃되면 먼 길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이러니 한 것은 과학과 판타지가 같은 비중으로 뒤섞여 또 하나의 변환을 유도해 낸다는 것이다. 즉, ‘극한의 과학은 판타지이며, 판타지의 극은 과학’이라고 작가는 귀결을 짓고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판타지이자 과학인 이오스와 차원의 자유가 실현된 무한 차원의 어느 공간에서 또 하나의 트랜스포메이션(변환)를 꿈꾸고 있을 주인공 이래안조차도 변환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3차원의 구 지구일지도 모른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 어디에서 변환(트랜스포메이션)을 꿈꾸고 있는가.

 

연보라색 소국의 향기 아래에서 판타지 소설 <가야>의 작가 박선숙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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