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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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에세이라고 하며 그녀의 집필실인 독일 시골의 한 오두막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우리는 그곳에서 작가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읽고 있고, 해체하고 있고 문장만드는 걸 부정하고 있다는 걸 알게된다. 그녀의 해체된 문장을 읽는 동안 독자들도 파편화되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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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0년의 낭만 십대의 원고지 1
이하은 지음 / 주니어태학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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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란 단어와 '2080'이란 단어를 연결시켜본다.

이상하다

'낭만'이란 2023년을 살아가는 지금조차도 낯설다 '1980'년대 어울리는 단어같다.

더군다다 손편지의 낭만이라니. 이거 80년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적었나?

그런데 작가는 십대다.

그들조차 손편지가 편하진 않을텐데, 지금 십대가 생각하는 미래는 어떨지 또 그 미래에서 쓰는 손편지는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최근들어 SF소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도 매번 작가들이 그려내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자주 찾는 중이다.

내가 상상하기에도, 대부분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내기에도 미래는 디스토피아다.

자연재해, 대폭발, 전염병의 창궐 등 어떤 큰 사건으로 인해 일상은 지금과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건 공상과학이 아니라 그냥 얼마 뒤의 우리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읽은 SF소설들은 점점 너무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먼 미래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먼 미래같지 않아서, 소름끼치도록 현실같아서 더 재미있게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또한 너무 미래를 낯설게 그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SF소설인줄 알았는데 공상과학 소설은 또 아니다.

미래가 아니라 때로는 과거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10대의 작가가 그려내는 100년 후의 10대는, 마흔의 내가 상상하는 10대랑은 다를 것이다.

생각해보니 미래를 상상했을 때 10대들의 모습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소설을 이야기하기 전에 10대를 자꾸 언급하게 되는데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10대라는 건 중요한 키워드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만들어지는 건, 그 나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그 나이기에 가능한 낭만이 아닐까.

누구나 십대를 지나고 청춘을 지내고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지만,

또 지나왔기에 잊히기 쉽다는게 함정이다. 아니면 아스라한 기억으로만 남아 섬세한 감정은 잊기도 한다.



소설은 편지형식으로 채워져 있다.

발전소 파괴라는 사고로 가족들을 잃고 센터에서 같이 자란 테멜다와 펜시어.

물론 그런 아이들은 한 둘이 아니라 센터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가족이자 같은 고통을 경험한 동료이다.

십대 후반이 된 테멜다는 파괴된 발전소의 복구 현장으로 자원해서 들어간다. 일년 동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연락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테멜다는 펜시어에게 장문의 손편지를 남겨 놓고 가게 되고, 펜시어는 어쩔 수 없이 그가 권한대로 손편지를 테멜다에게 쓰게 된다.

테멜다는 손편지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낭만을 펜시어도 알았으면 한다고 한다.

낭만? 손편지의 낭만은 무엇일까. 사실 이 '낭만'이란 단어 자체가 묘하게 나이듦과 엮어진다.

낭만적일 순간일 때는 그것이 낭만인줄 몰랐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게 낭만이었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개인 휴대폰이 없던 시절, 서로 약속장소와 시간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마냥 상대방을 기대라는 것 또한 낭만으로 남아있다. 지금에서야 낭만이라고 하지 당시에도 그걸 낭만이라고 했을까.

여튼 여기서 테멜다는 편지는 누군가 받지 않아도 그걸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 글을 쓰는 나의 시간들.

그 고유의 시간 자체가 낭만이라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한 자신의 손근육마저도.

편지를 쓰고 있는 그 시간은 내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사실 받는 사람을 향해 있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편지를 주고받는 내용일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편지는 펜시어에서 테멜다에게 일방적으로 보내진다.

쓰고 또 써서 부친 편지들과 부치지 않은 편지들.

그 편지들이 채워져서 이야기가 완성된다.


사실 편지라는 형식은 좀 편리하다.

일방적으로 한쪽의 이야기만 전달하면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기에서 어려움이 있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소설 전체의 그림을 그려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년 후라고 하지만,

10대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그들의 생활도 '발전소 폭발사고'가 없었다면, '불법 시술업체'라는 것이 없었다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현재도 어떤 사고든 계속해서 일어나고, 그건 지구상의 일부분일 뿐이고, 인간에 대해 불법으로 행해지는 범죄 집단들은 워낙 많아서 이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홀로행아웃'이나 '베이스'같은 낯선 단어를 넣어 미래를 연상하게 하는 것 외에 소설 속 2080년이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미래같다.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 소설은 반전 아닌 반전으로 세세한 부분은 조금 조심스러워지게 된다.

소설을 읽어가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이건 마냥 명랑한 청춘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덮고 잠깐 상상해보았다.


어렸을적 가족들을 모두 사고로 잃고 센터로 보내져서 자란 나.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서로가 가족이자 동료였다. 그 중 특히 동갑인 그 친구와 나.

한 명은 늘 하늘을 올려다보고, 먼저 한 발 앞서간다. 그리고 항상 그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나.

나에게 그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친구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항상 곁에서 함께 하고 싶다.

그런 상대를 일년 동안 만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편지를 보내게 된다.



마흔이 된 지금의 나는 그러한 상황도 무덤덤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신경써야할 더 많은 것들이 있으니 슬프지만 친구가 잠시 멀어졌다고 슬퍼할 겨를이 없다.

사실 '가족'이 멀리 떨어졌다고 해도 지금의 나는 참 무감각하다.

그러나 내가 10대였다고 생각한다면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친구가 아주 큰 의미였고 주인공 펜시어에게는 그가 친구이자 가족이었으니,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테멜다는 그리워하며 긴 문장을 쓰는 펜시어를 무심하게 바라보다, 다시 그 입장에 서서 상황을 다시 살펴보고는 마음이 짠해진다.

돌아보면 그가 적어내려간 문장들 속에는 정말 그 나이에 가득찰만한 희망이나 절망, 고민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나의 십대가 그러했고 많은 이들의 십대가 그러했을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다치기 쉬운 감정들에 대해서.


하지만 하늘을 보는 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않은가. 아직 가보지 못한 모든 공간은 오직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아름답고 빛나고 늘 변화하는 것들은 모두 하늘에 있다. 어떻게 고개를 들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지만 내가 그 밤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평소와는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별이나 하늘 같은 걸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고개는 매일 그랬던 것처럼 위를 향하고 있었지만, 하늘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왜 그랬던 건지는 …… 아직 고민이 필요하다

p.232




연필을 잡을 무렵부터 이야기를 써왔다는 작가는 현실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화려한 상상력으로 미래의 청춘들을 우주로 보내버리기 보다는 이성적인 상상력으로 현재의 고민을 미래의 청춘들과 함께 고민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청춘들의 고민은 변함없을 것이고, 사회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 형태와 모양이 조금씩만 바뀌고 표현하는 방식이 바뀔 뿐.

이 책을 읽다보니 지금도 레트로를 다시 사랑하는 것처럼 미래에도 손편지라는 낭만이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디스토피아라고 해도 내가 미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는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만 있지 않다는 걸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절망들 속에서도 항상 희미한 희망과 사랑은 존재하는데, 항상 미래를 어둡게만 상상하는 나라할지라도 그런 작은 희망들은 발견하는 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건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다르지 않다.

절망의 감정은 절망 그대로 인정하고, 그 속에 희미한 희망을 불빛삼아 한 걸음씩 나아가는게 오늘 내가 인간으로서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나의 청춘을 되돌아보면 딱히 낭만적인 구석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대부분 그렇듯이 치열했다는 느낌이 더 강렬하다. 하지만 그 속에 분명히 반짝반짝 빛나는 낭만이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들사이로 존재했을터였다.

책을 읽고 2080년 미래의 십대를 상상하는 게 아니라 나의 과거 십대 모습을 그려보게 되니 참 묘한 감정이다.



하지만 하늘을 보는 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않은가. 아직 가보지 못한 모든 공간은 오직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아름답고 빛나고 늘 변화하는 것들은 모두 하늘에 있다. 어떻게 고개를 들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지만 내가 그 밤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평소와는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별이나 하늘 같은 걸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고개는 매일 그랬던 것처럼 위를 향하고 있었지만, 하늘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왜 그랬던 건지는 …… 아직 고민이 필요하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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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 해요, 하고 나는 당신에게 말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최초의 여행이므로, 우리는 커다란 가방을 끌고 얼어붙은 진창과 차가운 수렁을 지나서 갔다. 보이지 않는 비가내리고….…… 하루는 묽은 밤처럼 어두웠다. 얼음의 냉기가 감도는 방안에서 책상 위에 엎드린 한 사람. 나는 주먹으로 유리창을 두드리며, 우리는 가야 해요, 하고 외쳤다. 너무 빠르고 급하게 가지 말아요 …… 하고 당신의 입이 말하려 하는 것을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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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파편이었다. 단지 속삭임, 몸에서 울려나오는 숨과 같은 속삭임, 물처럼 들어올리는 속삭임, 글이 호흡하는 속삭임, 글을 해체하는 속삭임, 몸없이 환하고 불완전한 사물과 같은, 하지만 속삭이는 사물인, 혹은 모순되고 파편적인 몸을 가진 소리, 하나의 물방울이 돌 위로 떨어질 때 비로소 풀려나는 광물의 속삭임, 동굴의 한숨인 속삭임, 먼 훗날어느 날 네가 희고 커다란 다리 위에 서 있을 때, 저녁이고 햇살이 강물 위로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에, 너는 혼자인데, 문득네 귀에, 네 입에, 네 몸안으로 동시에 덮쳐오는 파도처럼 사납게 속삭이는 여러 겹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느끼고, 놀란 얼굴을 돌려 방금 누균가 네 곁을 스쳐지나간 것은 아닌지 헛되이 확인하려 할 때, 멀리 다리 건너편, 석탄처럼 불그스름하게 이글거리는 인파 속으로 막 사라지는 M***의 뒷모습이 보였다고 믿는, 그런 글쓰기를 원한다고,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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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여름날이었으리라. 여인은 나를 화단으로 이끌고, 카메라의 플래시가 번쩍인다. 여인은 항상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이해하게 되었던 여인의 말. 여인은 최초의 말과 글을 내 의식 내부로 전달해준 언어의 영매, 미디엄 medium이었다. 우리가 바다로 산책을 갈 때, 여인은 종종 노래를 불렀다. 파도소리와 더불어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숲의 깊은 술렁임. 짙은 송진냄새. 기이할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최초의 기억은 실제로아이가 보고 듣고 느낀 감각인지, 아니면 게르하르트 마이어가 썼듯이, 우리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내면에 간직하고 있던이미지와 생각이 현실 사물에 투영된 현상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일생 동안 그것을 먹고 산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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