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의 문학은 설명이 많이 된 영역이어서, 집중적으로 탐구된 주요 언어권에 아직도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는 걸작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십여 년 전에 나는 우연히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는 그 책을 지난 한 세기의 소설과 범소설(para-fiction)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며 창조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에 포함시키고 싶다.)

레오니드 치프킨,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중 '수전 손택의 서문', 이장욱 옮김, 민음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6-07-1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품일까 구경하려고 미리보기를 했더니 수전 손택의 서문까지만 나와요 ㅠㅠㅠ

boooo 2016-07-18 09:54   좋아요 1 | URL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부인, 안나의 이야기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재미있을 거예요 ^^
 

˝불이문을 통해 대웅전까지 바라다 보이는 심상치 않은 경관은, 연결과 분절을 통해 장중한 시각적 깊이와 기대감을 더해 준다.˝

˝그곳에서 보이는 가장 중요한 경관은 건축적 경관이 아니라 불이문 지붕 위로 뚜렷하게 보이는 영축산이다.˝

(김개천, 명묵의 건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시대의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보석 중의 하나인 네르발의 <실비>는 노래 부르기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조화를 이룬 구조로 되어 있어서 단지 다시 읽어 볼 수 있을 뿐, 계명 창법으로 기억할 수는 없다. 비발디는 노래 부르기 쉽지만 드뷔시는 그렇지 않다.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열린책들


이에 달린 옮긴이(김운찬)의 주석

- 네르발(1808~1855)의 소설 <실비> (1853)는 에코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이 작품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글을 썼다. 이 작품에 대한 에코의 최종적인 종합으로는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열린책들, 2009)에 실린 <발루아의 안개> 참조.


움베르토 에코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는데 읽지 않을 수 없다. 찾아봤다. 번역본이 있다. 199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최애리'씨 번역으로 <실비/오렐리아>가 나왔는데 절판. 신아사, 정우사에서 출간된 책도 절판. 2012년 이준섭 번역으로 지만지에서 나온 책도 절판. 


기다리다 구했다. 지만지에서 나온 초록 장정의 책이다. 그 도입부


나는 어느 극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매일 저녁 나는 구애자다운 성장을 하고 무대 앞 칸막이 좌석에 나타나는 것이 상례였다. 때로는 모든 것이 충만해 있었고, 때로는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었다. 겨우 삼십여 명의 연극 애호가연하는 자들이 메우고 있는 일층 뒷좌석이나 챙 없는 모자를 쓰고 구식 치장을 한 사람들이 차 있는 칸막이 좌석을 바라본들, 화사한 옷차림과 번쩍이는 보석, 환한 얼굴들이 층층을 메우고 웅성거리며 생기 넘치는 관중석의 분위기에 젖어본들, 내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나는 실내의 광경에는 무관심하였고 연극도 거의 내 마음을 끌지 못했다. 다만 그 당시 걸작이라는 한 지루한 작품의 제2장이나 3장에서는 예외였다. 아주 낯익은 모습의 여인이 나타나 텅 빈 공간을 비쳐주고, 나를 둘러싼 이 공허한 얼굴들에게 한 번의 숨결과 한마디 말로 활기를 불어넣을 때만은 예외였던 것이다.


제라르 드 네르발, <실비 / 산책과 추억>, 이준섭, 지만지고전천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도 PC에서 쓴 글은 북플에서 수정하지 못한다. (개선하기 어려운가요?) 발행한 글을 수정하고 싶은데 컴퓨터는 켜기 귀찮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고양이라디오 2016-11-28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타가 보이면 수정하고 싶은데 북플에서 안되서 아쉽습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 쓰는 게 쉽지 않다. [이 한 문장을 쓰고 `게-것이`가 눈에 띈다. 저자는 `적의`를 보이는 `것들` 즉, `적` `의` `것` `들`은 습관적으로 쓰기 쉬우니 가급적(벌써 `적`을 두 번이나 썼다) 줄여 써야 한다고 했다] 

문장을 쓴 다음 무언가 걸리는 기분이 들 때면 이 책을 뒤적인다. (문제는 찾으려 해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책에 적힌 좋지 않은 예를 너무 태연히 쓰고 있었다. 아무 의식 없이. 앞으로 잘 쓰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저 '무언가 걸리는 기분이 들' 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qualia 2016-06-29 05: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장 작법(글쓰기) 책들 대부분이 “적/의/것/들”을 되도록이면 쓰지 말라고 하던데요. 저는 이게 우습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책들이 오히려 저런 습관적인 주장을 습관적으로 한다는 느낌입니다. 대체 그 근거가 뭐라는 것인지요? 근거가 설득력 있고 타당하다면 일부 받아들여서 참고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판단컨대 그 근거가 불분명하거나 매우 빈약해 보입니다.

저는 솔까 “적/의/것/들”을 의도적으로 즐겨 쓰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의 ”가 한 구절에서 서너 네댓 번 반복되는 명사구를 의도적으로 쓰기까지 합니다. 문법적/논리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축약 표현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영미권 유명 작가/철학자들 영어 문장에도 “~of”가 서너 네댓 번 반복되는 명사구가 많이 나옵니다. 이때 이걸 “~의 ”가 서너 네댓 번 반복되는 거의 동일한 형식으로 번역해도 괜찮습니다. 이른바 ‘직역투/번역투’라고 비판받는 사례 말입니다. 물론 좀 더 우리말답고 좀 더 가독성 높은 번역문이 가능하다면 “~의 ” 중복 문장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의 ” 중복 문장이 가독성에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고, 오히려 축약 표현을 가능케 한다면 얼마든지 반복 채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솔까말 “적/의/것/들”은 한국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분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적/의/것/들”의 쓰임새와 기능은 아주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해서 이것들을 쓰지 않고는 우리말 문장을 자연스럽게 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해서 문장을 적법하고 매끄럽게 쓸 수만 있다면 “적/의/것/들”은 얼마든지 반복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상이 이러한데, 습관적 주장을 철저한 분석과 타당한 근거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글쓰기 책들한테 무비판적으로 동의하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글쓰기 책들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그 책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boooo 2016-06-29 09:03   좋아요 0 | URL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

cyrus 2016-06-2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문법을 잘 쓰려고 생각을 많이 하면, 문장 하나 제대로 쓰기 힘듭니다. ^^;;

boooo 2016-07-08 22:2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쓸 때마다 신경 쓰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