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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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가 쓰고, 안인희가 옮겨 출판사 유유에서 출간된 <위로하는 정신,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를 읽다. 몽테뉴에 대해서는 아는 거라곤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수상록>을 쓴 사람이라는 건데,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글을 통해 접하니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미셸 드 몽테뉴. 그가 태어난 시대에 대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설명


(미셸 드 몽테뉴가 태어난 16세기에는 거대한 희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20세기 초반에 경험한 것과 같은 거대한 희망, 곧 세계가 인문주의를 통해 밝아질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르네상스는 단 한 세대 만에 온갖 예술가, 화가, 시인, 학자 들을 배출하여, 다시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당시 행운의 인류에게 선물해주었다. 창조의 힘이 어둡고도 혼란스러운 삶을 변화시켜 한 단계씩, 한 파동씩 신적인 삶으로 올라가게 해줄 백 년, 아니 수백 년이 막 열리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세계는 넓고 풍요롭고 부유해졌다.)


(인문주의에서 야만성으로의 추락을-우리가 오늘날 다시 겪고 있는 것 같은 인류의 광증의 폭발을-무력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던 것, 흔들림 없는 정신의 각성과 누구보다도 뛰어난 공감 능력으로 인해 영혼이 깊은 충격을 받고 있는데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야말로 몽테뉴의 삶에서 근원적인 비극이었다.)


(그 시대에 인문주의적 인간이 어떤 느낌을 지녔는지는-우리 자신의 감정과 무서울 정도로 비슷한-라 보에시가 1560년에 스물일곱 살이던 친구 몽테뉴에게 보낸 시가 증언해주고 있다. 이 시에서 라보에시는 이렇게 외친다.

"대체 어떤 운명이 우리를 하필 이 시대에 태어나게 했단 말인가! 나라의 붕괴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나는 이민을 떠나는 것밖에는 달리 길이 없구나. 내 집을 떠나 운명이 나를 이끄는 곳으로 가는 수밖에는.")


(우리 삶을 더욱 순수하고 아름답고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 우리의 평화, 독립, 타고난 권리 등 이 광신도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겨우 열 명 남짓한 인간들의 광증에 제물로 바쳐진 시대에, 시대로 인해 자신의 인간성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의 모든 문제는 단 한 가지로 집중된다. 곧 '어떻게 하면 나는 자유롭게 남아 있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몽테뉴가 살던 시대를 말하며, 그 시대가 자신이 살던 시대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지금의 시대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도 자신에게 묻고 있을 거다. "어떻게 하면 나는 자유롭게 남아 있을 수 있는가?" 얼마전 본 <송곳>의 이수인이 떠오른다. 시대와 사회가 그에게 강요하는 것들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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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2015-10-30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시, 취업, 결혼, 육아, 노후... 어떤 시대에도 사회는 우리에게 계속적인 숙제를 주는것 같아요. 군대에서 딴생각 못하게 끊임없이 굴리는 것처럼 말이죠. 나와 내가족을 지킬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력과, `만족`할 수 있는 능력, 포기할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자유를 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