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 소나무총서 31
박현채 지음 / 소나무 / 1992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흔히 '청한사'라고 불리는 고 박현채 선생님의 명저다. 현대사를 공부할 때나 세미나를 할 때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와더불어 커리로 가장 많이 보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서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역사나 경제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어느 정도 담보되어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필자들의 소논문들이 시대 순으로 잘 짜여맞춰져 있어서 특히나 관심이 있는 부분들을 찾아가면서 읽어도 무난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일까'라는 의문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또한 읽기가 그다지 쉽지 않은 이 책을 보면서 도대체 왜 선배들이 강하게 추천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항상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단지 객관주의적인 해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살아숨쉬는 역사를, 현재에 맞춰 재구성한 역사를 끊임없이 보여주려는 노력들이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왔던 것 같다. 물론 이 책이 나온 지 이제 10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그 의미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특히나 유명한 박명림 씨의 글이나, 김동춘씨의 글은 잘못 알고 있던 내 머리 속의 역사를 철저히 깨어부수는 충격을 줄 것이다. 특히나 경제적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청한사'는 항상 현실을 고민하고, 항상 역사와 대화하려고 하는, 항상 내머리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진정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이다.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사진들도 함께 보면서 역사의 생생한 기억들을 되살려보길 바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자본주의의 형성과 심화과정을 중심으로 하고 그 속에서 민중의 역사적 진출을 서술하고 있는 경제사중심의 서술이라는 점이다. 차분한 어조와 입체적인 분석은 현대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운 것이지만, 때로는 새내기들에게 지루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는 종속적인 조건하에서 축적과정을 겪어온 한국자본주의의 형성과 그것의 독점강화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데서 드러나는 역사진행의 합법칙성에 대한 신뢰와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조망할 때의 입체적인 균형감각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구조 : 기원, 원인, 영향'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인데, 그 글은 한국전쟁의 기원과 영향을 서술하면서 개인과 구조, 혹은 우연과 필연의 대립항사이의 어느 일방에 함몰되지 않은 채, 슬기롭게 그런 대립구조를 지양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나치게 수정주의적 경향에 치우친 다른 책들과는 달리 한국전쟁에 관한 스탈린과 김일성의 책임 또한 간과하지 않음으로써, 고착화된 분단구조를 극복하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부터 남한 뿐 아니라 북한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책에 드러나는 몇몇 구절들이 지난 80년대의 역사적 법칙에 대한 과도한 끼워맞추기라는 혐의가 드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대사의 고전이라고 칭해질 만하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책들이 어느 정도 등장해야 할 때가 또 오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은 버릴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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