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뷰티풀
앤 나폴리타노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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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으로 네 자매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작가가 의도를 했을지는 몰라도 ‘루이자 메이 알콧’의 ≪작은 아씨들≫의 다른 버전으로 읽힌다.
게다가 이야기가 좀 뻔한 구석이 있다. ‘작은 아씨들’을 염두에 두고 읽자니 더 그렇다. 이 사람은 나중에 글을 쓰겠네, 하면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사람은 나중에 일찍 죽겠네, 하면 병에 걸린다. 넷 중에 한 명은 동성애자가 아닐까, 했더니 느닷없이 커밍아웃을 한다. 예쁘게 봐주려는 필터를 벗기면 아침드라마에나 어울릴 법한 막장 요소까지 보인다. 점입가경이다. 불륜에 가까운 사랑에 불치병이라니. 너무 뻔한 거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독자들마다 ‘개취’가 있으니, 이 작품의 뻔함과 결말의 신파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겐 올해 들어, 여태까지 읽은 책 중 베스트에 속한다. 사랑스럽고 현실적인 인물에 이야기는 풍성하고 감정은 절절하고 재치 있는 대사에 빠른 전개, 그 뻔하디 뻔한 가족애와 형제애, 화해와 용서라는 주제까지. 뭐 하나 빠뜨릴 게 없다.
간극을 벌여놓고 찢어진 틈새로 피고름이 흐르는 소설도 좋지만, 이렇게 울퉁불퉁하긴 해도 상처가 아무는 걸 지켜보는 소설 또한 나름의 미덕이 있다. 각박하고 무서운 세상에 갑옷을 두르게 하는 이야기도 거짓말이 뻔한데도 희망과 행복을 주는 이야기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익숙한 이야기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척, 애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뻔해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작가가 보이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에서 작가는 그런 장애를 정면돌파한다. 그래. 나 뻔한 이야기 쓸 거야. 남이사? 이런 뻔뻔함, 우직하게 나아가는 힘이 느껴진다. 그쯤 되면 독자로서도 이런 마음이 생긴다. 그래? 그러겠단 말이지? 어디 한 번 보겠어.
결과는?

익숙함과 뻔함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야기에 진심이 담겨 있는가이다. 착하고 모범적인 인물이 나오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실수를 한다. 실수도 하고 오류도 하고 의도적인 악행도 저지른다. 문제는 자신의 실수를 어떻게 다루느냐, 그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이다. 작가는 인물들(주로 ‘줄리아’와 ‘실비’)을 통해 오류투성이, 실수투성이, 엉망진창에 가까운 실제의 우리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인물들을 보면서, 그 안에서 독자들이 자신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이야기에 진심이 있다고 여긴다. 허무맹랑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질지라도 인물들의 감정과 반응, 행동은 ‘그럴 성 싶어야’ 한다.
소설 작품을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과연 이런다고? 진심이야?’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난 ‘거짓’이라고 본다. 최소한 진심은 없다고.

사족.

주로 여성 독자들에게 어필할 요소들이 많다고 하면, 너무 성차별적인 발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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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 문지 스펙트럼
E.T.A. 호프만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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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앞에 읽은 ‘위수정’의 책, 어느 단편에서 잠깐 언급됐더랬다. (아! 나한테 있는 책이었지)
이 작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표제작인 <모래 사나이>고, 이 작품이 실린 번역본만 내가 알기로 7권이 넘는다. 작가의 단행본은 물론이고, 호러+환상 문학 선집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에 읽은 ‘문학과지성사’ 판은 작가의 대표작 세 편이 실려 있고,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 135권으로 나온 ≪밤 풍경≫에는 원작에 실렸던 작품 8편이 모두 실려 있다. 혹시나 읽을 의향이 있다면 을유문화사 판을 권한다.

한참 후배인 ‘아서 메켄(Arthur Machen)’과 공통점이 많다. 낭만주의적인 작풍에 호러와 미스터리, 환상소설 등의 장르적인 색채가 강하다.
대략 골자를 추리자면 이렇다. 유한계급의 한량인 남주가 위험에 빠진 묘령의 여인과 우연히 마주치고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빠진다. 우리의 히어로는 그 여성을 구하려다가(도우려다가) 자신도 위험에 맞닥뜨린다. 그 와중에 어마무시한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다소 고리타분한 클리셰처럼 보이지만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20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이야기가 생생하다. 장황한 묘사와 오골오골함, 다소 과장된 비장함을 잘 넘긴다면 요즘의 (장르)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 가능하다.

<적막한 집>이 호러와 미스터리의 조합이라면, <장자상속>은 미스터리 성격이 강한 대서사시 같다. 중편 길이의 분량에 이런 장황함이라니. 작가의 일방적인 설명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 다소 지루하다.

<모래 사나이>는 작가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의 원전이 된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의 왕>) 호러, 환상소설 선집에 빠지지 않는 작품이라, 여러 번 읽었음에도 이번의 감상은 다소 달랐다. 이야기의 자극적인 요소(공포 효과와 모호하고 열린 결말 등)를 제거하면 ‘트라우마’에 대한 고찰, 심리 소설을 지향했던 작가의 의도가 좀 더 부각된다.
읽을 때마다 최종적인 감상이 내려앉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 그런 것이 바로 200년의 세월을 살아남게 한 작품의 힘을 증명하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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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없는 밤
위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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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지 석 달이 지난 후에 뭔가를 적으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장편소설이면 그럭저럭 감상을 추릴 수 있겠으나 열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일단 올해 첫 책으로 읽은 작가의 첫 소설집, ≪은의 세계≫와는 많이 달랐다고는 말할 수 있다. 전작이 모호하고 불친절했다면, 이 책은 대체적으로 이야기의 윤곽이 잘 보였다. 어떤 이야기인지 대략 잘 보였다는 말. (그럼에도 말미에 실린 단편 세 편은 여전히 모호했다)

편편이 감상을 적기 위해서 다시 읽어야 할까. 그럴 생각도 했으나 굳이? 이 책으로 시험을 치를 거면 몰라도.

기억을 더듬어 인상적이었던(느낌의 잔재나마 건질 수 있는) 작품들을 적어보자면…

영원한 이인자의 열등감과 시기심을 보여주며 자신을 좀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실은 <제인의 허밍>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차이는 있겠으나, 그(그녀)가 되기 위해 사소한 것을 빼앗는 인물은 ‘문지혁’의 단편, <허리케인 나이트>를 생각나게 한다.

드러난 거짓이 많을 때, 진실이라고 알려진 건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가부장적 온정주의에 빠지기 쉬운 선의에 대한 경고처럼 읽히는 <몬스테라 키우기>는 ‘휴 월폴’의 인상적인 단편 <은가면>을 연상시켰다.

‘E. A. 포우’의 고전적인 단편, <검은 고양이>를 패러디한 <플루토, 너의 검은 고양이>는 창작과 모방, 현실과 망상, 허상과 본질, 피상과 이면의 대립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여자로서 몸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처럼 읽혔던 <멜론>은 분위기, 서사의 흐름을 뒤집으며 환기하는 엔딩이 인상적이었다.

뭐, 이 정도로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으려나. 책을 읽으며 짧게 메모를 해두었으나, 지금으로선 그것들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 읽고 바로바로 감상을 정리해야지, 미뤘다간 이런 낭패를 보게 되니 나의 안일함과 게으름은 정말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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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안드레스 바르바 지음, 성초림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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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말고는 달리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36쪽)❞

❝누군가는 인형이 소리치지 못하도록 그 입을 막아야 했다. 나였던가? 너였나? 누군가는 인형을 밀어야 했다. 우리가 모두 바닥에 넘어졌고 그 인형 위에 있었으니까. 누군가는 그 인형을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 발길질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차분해지도록, 다른 어떤 인형도 그런 적 없을 만큼 차분해지도록, 너무 차분해서 우리가 숨을 돌리기까지 한참이 걸리도록.

인형아, 나는 여러 날을 울었어. 그리고 너를 그리워했어.

우리는 밤새도록 꼼짝않는 그 인형과 놀았다. (124쪽)❞


일곱 살의 ‘마리나’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 들어간다. 그곳엔 다른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마리나는 이방인이다. 마리나와 아이들은 서로를 탐색하며 친구가 될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건 언제인지 기회를 엿본다.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리나와 아이들의 시점을 오간다. 마리나의 편에서는 3인칭 시점이, 아이들의 편에서는 1인칭이다. 1인칭의 아이들은 ‘나’가 아니라 ‘우리’다. 그들은 이미 그곳에 속해 있음으로 하나의 집단을 이룬다. 반면 마리나는 이방인이자 개인이다. 그곳에 속할지,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지는 아직 미지수다. 속하고 싶은가 하면 속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 역시 마리나를 받아들이는가 싶다가도 밀어낸다.

‘외집단(outer group)’과 ‘내집단(inner group)’ 사이의 권력, 한편으로는 인간 심리의 양가성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 의미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소 다르다. 다소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이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다가도 밀어낸다. 사랑이라고 말을 하면서 폭력을 휘두른다. 호기심과 긍정적인 관심이 배타적인 폭력과 동시에 양립할 수 있는가. 작가는 그렇다고 말한다. 다소 모호하게 처리된 결말은 인간 심리의 양가성과 계급의 폭력을 섬뜩하게 드러낸다.

호기심은 가끔 폭력의 양상을 띤다. 아이들에게서 ‘순수한 악’의 요소들을 종종 발견한다. 인간의 잔인성, 폭력성은 종종 순수함과 동반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그 둘은 어쩌면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시적인 문장은 암시로 가득 차있다. 상징과 복선이 난무한다. 모호한 분위기, 무시되는 논리와 개연성, 생략과 비약이 심한 서사는 이야기의 환상성을 극대화 한다. 고개를 돌릴 정도의 끔찍함엔 일정량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이를 드러낸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스페인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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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소리를 듣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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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팝니다. 삽니다.
각종 고민 상담 및 의뢰 환영.❞


허름한 외관에 이름이 ‘달나라’인 가게는 중고 물품을 사거나 팔면서 자질구레한 심부름도 맡는 그런 곳이다. 그 장소를 배경으로 세 인물이 등장한다.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18세의 ‘류타’, 달나라의 숙식 종업원인 ‘다이고’, 그리고 그곳의 사장인 인색하고 괴팍하지만 어딘가 인간미 있는 노파 ‘다카에’. 류타와 다이고가 만나 친구가 된 하로노부 야간 고등학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다.

연작 형식의 장편이다. 세 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존재하고, 그것들이 곧 하나의 커다란 사건을 이룬다. 이야기의 뼈대이자 대미를 장식하는 사건은 바로 십여 년 전, 동네에서 발생했던 일가족 살인 사건.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던, 가족의 어린 아들의 행방은 묘연하고 용의자는 자살했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지만 완전히 잊힌 건 아니다.

일가족 살인사건이라니. 무시무시하게 들리지만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경쾌하다. ‘코지 미스터리’의 색깔이 두드러진다. 류타와 다이고, 그리고 집안에 틀어박힌 류타를 야간 고등학교로 이끈 ‘유리코’의 이야기만 보면 십대들의 성장 드라마의 색채도 갖는다. 아웃사이더, 소위 ‘문제아’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다. 그런 문제들을 생산하는 사회를 향해서는 날을 세우기도 한다. 사회적인 주제의식도 담겨 있어 독자들의 경험은 더욱 다양해진다.

전체를 아우르는 사건보다 그것들을 구성하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더 빛난다. 아이디어들은 새롭고 추리는 과학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자연 구석구석에 숨겨진 크고 작은 비밀들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작품을 위한 자료 조사에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보인다. 작가는 자신이 잘 아는 것을 써야 하지만 그것만 쓴다면 금세 도태된다. 이야기를 쓰고 짓는 일에 엄청난 공부가 따른다는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니다.

소소하지만 기발하고, 과학적이지만 인간적인 에피소드들을 거치며 차곡차곡 쌓아놓은 호감과 재미, 서스펜스는 뒤로 갈수록 약해진다. 가장 무게가 실린 사건의 해결은 다소 허무하다. 가장 공을 들어야 할 부분에서 작위성이 드러나고 우연이 개입되어 긴장감이 떨어진다. 마시던 콜라가 시간이 지날수록 김이 빠지고 밍밍해지며 단맛만 강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서글프고 아련한 정서, 곳곳의 유머와 쾌활함, 드라마틱함과 기괴함이 적절히 섞인 독특한 분위기는 작가 ‘온다 리쿠’를 연상하게 하는 장점이지만 뒷심이 빠지는 건 몹시 아쉽다. 작가의 다른 작품, ≪어리석은 자의 독≫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감상이었던 걸 보면 작가의 고질병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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