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기대어 나를 안았다
나태주.최영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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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적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이다.

문학을 전공했고, 문학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정작 문학에 깊이 빠져본 경험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나이기에 문학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는 시를 읽고 마음이 울린 경험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시에 기대어 나를 안았다』는 그런 나에게 문학, 특히 시를 앞으로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작은 힌트를 던져준 책이다. 이 책은 나태주 시인의 시를 중심으로 심리상담가 최영경의 짧은 글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저자 최영경은 나태주의 시를 거울 삼아 ‘나’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돌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사이사이 상담심리학의 여러 개념도 등장하는데,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흥미를 돋우는 정도라 부담 없이 읽기 좋았다.

책의 제목처럼 저자는 말 그대로 ‘시에 기대어 나를 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나는 시를 시인만의 상징과 의미가 담긴 글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면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만 같았고, 자연스레 시는 내게 어려운 문학으로 남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시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을 알려주었다. 시를 읽는 동시에, 그 시에 비친 나를 읽는 것.

나태주 시인의 시는 특히 그렇게 ‘나’를 읽기에 좋은 시들이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어렵고 복잡한 시를 많이 접해온 내게, 꾸밈이나 기교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담백하고 솔직하게 건네는 그의 시가 반갑게 느껴졌다. 나태주 시인의 시와 그 곁에 놓인 최영경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시에 대해 내가 세워두었던 벽도 조금은 낮아져 있었다.

시를 읽는 법만 배운 것은 아니었다. 짧은 글들을 하나씩 읽어가는 동안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고 싶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새롭게 결심했다기보다는 이미 마음 한편에 품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꺼내 확인하고, 조금 더 믿어보게 된 시간에 가까웠다.

마음이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 혹은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시를 잘 읽지 못하는 나에게도 시를 기대어 나를 돌아보는 일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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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는 왼쪽에 - 『자본』의 세계사와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
강신준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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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는 왼쪽에』 강신준 지음 (사계절출판사)

이 책은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해, 이 상황을 벗어날 ‘비상구’를 안내한다.

그 비상구의 실마리는 마르크스에게서 찾는다. 저자는 ‘각자도생’하는 사회에서 너와 나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나와 내가 사는 현재에만 시선을 가두지 않고, 타인과 과거, 미래까지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책의 중후반부까지는 마르크스가 그린 ‘비상구’의 설계도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문명과 야만, 의지와 현실이라는 두 쌍의 개념이 논의의 중심이다. 자칫 원론적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이다. 아니, 다른 책에서 다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8장부터는 앞서 설명한 설계도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건 그 앞부분마저 읽고 싶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알맹이도 훌륭하지만, 그 알맹이를 감싼 껍데기, 즉 글을 풀어내는 방식의 훌륭함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낯선 개념을 설명하다가도 익숙한 속담이나 영화 이야기로 슬쩍 독자를 끌어온다. 덕분에 어려운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걸음을 멈출 일이 별로 없다. 그렇게 저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처음엔 멀게 느껴졌던 논의가 지금 내가 사는 사회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최근 읽은 인문서 가운데 이토록 빨려 들어가듯 읽은 책은 드물었다.

나는 이 수려하고 때로는 유쾌한 글솜씨가 저자의 절박함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이 발견한 비상구를 독자에게 떠먹여서라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졌다. 왜 그토록 전하고 싶었을까.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며, 나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혐오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책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짚는데, 나는 그 밑바탕에 나와 다른 이를 알려는 노력의 부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관계의 중요성을 거듭 이야기하는 대목을 읽으며, 어쩌면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비탈길을 걷는 듯한 우리 사회에서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을 쓰게 한 것은 아닐까.

이 사회에 발붙여 살면서 한 번이라도 단전에서 올라오는 듯한 이상한 찜찜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나는 이제 강신준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보려 한다.

*본 리뷰는 사계절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비상구는왼쪽에 #강신준 #사계절출판사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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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눈부신 파랑 - 2026 뉴베리 대상 수상작 ㅣ 큰곰자리 고학년 12
르네 왓슨 지음, 송예슬 옮김 / 책읽는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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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12세 소녀의 감정을 가감 없이, 아주 진솔하게 보여준다. 딱 그 시기의 소녀가 아주 소중한 이를 잃었을 때 느낄 법한 현실적이고도 내밀한 감정이 눌러 담겨 있어 읽으며 유독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 감정을 슬픔 하나로 단순하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도의 과정에는 슬픔뿐 아니라 분노도, 때로는 후련함도 찾아온다. 인간이기에, 특히 아직 어린 소녀이기에 느낄 수 있는 모순되고 솔직한 마음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오로지 극복해야만 하는 것인지, 애도의 과정에는 반드시 슬픔만이 있어야 하는지.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너무 짭짤하기만 하거나 너무 달콤하기만 한 건 누구에게도 좋지 않아.”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더 넓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넌지시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너무 짭짤하지도, 너무 달콤하지만도 않게. 그저 그 모든 과정과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마음 한켠에 새겨둔 채, 때가 되면 보내주는 것.

상실이라는 경험 앞에서는 누구나 12살의 세이지처럼 어려지고 만다. 곁에 있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몇 번을 겪는다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미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뿐 아니라, 언젠가 소중한 존재와 이별해야 할 우리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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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들어 주는 벤치 - 열네 명의 할머니, 한 개의 벤치, 오십만 명을 살린 마음 치유의 혁명
딕슨 치반다 지음, 주민아 옮김 / 판미동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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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들어 주는 벤치』 딕슨 치반다 지음 | 주민아 옮김

마음이 아플 때 우리는 자꾸만 정답을 찾으려 한다.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약을 먹고, 무엇을 해야 나아질 수 있을지 고민한다. 물론 적절한 치료와 처방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혹은 그와 함께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풀어놓을 기회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정 벤치’의 열네 명의 할머니들은 정신건강에 관한 대단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때로는 그럴듯한 답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자리가 먼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스토리텔링‘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마음은 수학 문제처럼 정확한 공식을 대입한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누군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혼자 곱씹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뒤엉켜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도 한다. 어쩌면 마음의 답이라는 건 애써 찾아내는 것보다 여러 시간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짐바브웨의 정신과 의사 딕슨 치반다와 우정 벤치의 할머니들이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반드시 멋진 해답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들어주고, 함께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이런 단순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저마다의 슬픔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외딴 섬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군도이며, 우리 안에는 서로를 위해, 그리고 이 지구를 위해 쓰일 날을 기다리는 수많은 보물이 잠들어 있다.” - 본문 중에서

책에서 특히 좋았던 문장이다. 힘들 때면 내 마음은 너무나 개인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설명해도 다른 사람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고,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우정 벤치에서는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다른 누군가는 그 옆에 앉아 듣는다. 그렇게 혼자 품고 있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와닿는다.

최근 들어 스스로 외딴 섬에 있는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한 번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꼭 마음이 아픈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일이 어렵거나, 반대로 누군가의 마음을 어떻게 들어줘야 할지 몰랐던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너무 좋은 책이었기에 적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미 글이 충분히 길어졌기에 글을 줄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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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연애 상담소
김호애 지음 / 토닥스토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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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어제 지하철 오고 가는 시간 동안 다 읽어버린 책. 환승길에도 다음 부분이 궁금해 책을 붙든 채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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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이른바 ‘극T’였던 보영의 마음에 봄바람이 불어오는 과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어딘가 가슴 아리게 담아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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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곁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순애 중의 순애인 선영과 규대, 아직 자신만의 사랑을 그려가고 있는 스무 살 청춘 현도, 말 그대로 노빠꾸 직진녀 유나라까지. 사랑 앞에서 망설이고, 기다리고, 때로는 냅다 돌진하는 모습들이 다 달라서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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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도 이리 열렬히 사랑하는데, 땅에 두 발 붙이고 살아가는 나는 뭐 이리 삶에 건성인지. 책을 읽다 문득 내가 살아가는 태도까지 돌아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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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유나라의 말이 마음속 깊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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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봄 되면 다 녹을 텐데 그냥 내리는 거잖아요, 눈은. 녹을 거 생각했으면 이렇게 예쁘게 못 내리지. 펑펑. 그러니까 사랑도 그냥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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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 날도 창창한데 이럴까 봐, 저럴까 봐 여러 핑계를 대며 숨어버렸던 그간의 내 행동들이 떠올랐다. 세 명의 재기발랄한 귀신들이 곁에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하고 등을 떠미는 듯한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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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맹랑할 것만 같았던 귀신들의 사랑 이야기에 실컷 울고 웃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저승의 이들이 아직 이승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금 별나고 유쾌한 삶의 지침서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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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바라며.
​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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