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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는 왼쪽에 - 『자본』의 세계사와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
강신준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평점 :
💡『비상구는 왼쪽에』 강신준 지음 (사계절출판사)
이 책은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해, 이 상황을 벗어날 ‘비상구’를 안내한다.
그 비상구의 실마리는 마르크스에게서 찾는다. 저자는 ‘각자도생’하는 사회에서 너와 나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나와 내가 사는 현재에만 시선을 가두지 않고, 타인과 과거, 미래까지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책의 중후반부까지는 마르크스가 그린 ‘비상구’의 설계도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문명과 야만, 의지와 현실이라는 두 쌍의 개념이 논의의 중심이다. 자칫 원론적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이다. 아니, 다른 책에서 다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8장부터는 앞서 설명한 설계도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건 그 앞부분마저 읽고 싶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알맹이도 훌륭하지만, 그 알맹이를 감싼 껍데기, 즉 글을 풀어내는 방식의 훌륭함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낯선 개념을 설명하다가도 익숙한 속담이나 영화 이야기로 슬쩍 독자를 끌어온다. 덕분에 어려운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걸음을 멈출 일이 별로 없다. 그렇게 저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처음엔 멀게 느껴졌던 논의가 지금 내가 사는 사회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최근 읽은 인문서 가운데 이토록 빨려 들어가듯 읽은 책은 드물었다.
나는 이 수려하고 때로는 유쾌한 글솜씨가 저자의 절박함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이 발견한 비상구를 독자에게 떠먹여서라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졌다. 왜 그토록 전하고 싶었을까.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며, 나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혐오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책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짚는데, 나는 그 밑바탕에 나와 다른 이를 알려는 노력의 부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관계의 중요성을 거듭 이야기하는 대목을 읽으며, 어쩌면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비탈길을 걷는 듯한 우리 사회에서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을 쓰게 한 것은 아닐까.
이 사회에 발붙여 살면서 한 번이라도 단전에서 올라오는 듯한 이상한 찜찜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나는 이제 강신준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보려 한다.
*본 리뷰는 사계절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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