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말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다 담긴 말이었다. 분노와 혐오, 그리고 증오까지. 노이즈가 잔뜩 낀 문구를, 사내는 그저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플레이어는 이 게임에서 자의적인 캐릭터 선택권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 공간 속에 있는 건 세현 혼자가 아니었다.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공간 안에 주저앉아 떨고 있었다. 보이는 사람들만 해도 수천 명은 넘어 보였다.

자신만의 제국. 사람들은 그 희소성에 목을 매고 달려들었다. 전략이 가미된 육성에 늘 머리를 싸맸고 생존과 부흥을 위해 악착같이 제국을 일궜다.

사실 이건 일종의 눈치와 기 싸움이었다. 중년인이 임시 거주인을 허락한 것도 실은 자신이 입지를 굳히는 데 세현이나 곽정한이 방해되기 때문이었다. 마을에 있으면 사람들을 부추겨 분쟁을 일으킬 게 뻔하고, 통제하기도 쉽지 않으니 나중을 위해 버려도 좋은 패들.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속성도 유형도 무. 각성을 하지 않았을 때 받는 페널티라는 건 아무래도 이걸 의미하는 듯했다. 말 그대로 허약한 인간의 특성만 가지고 생존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답 없는 한숨만 연이어 새어 나왔다. 그런데도 아직 덜 데였는지 모든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안개만 자욱한 곳이 실재하는 곳인지, 왜 이곳으로 불려오게 되었는지, 싸워야 할 게 무엇인지, 그 무엇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맡은 바 일을 하며 서로 돕고 마을을 꾸리는 정도로만 살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엘릭스는 그런 걸 허용하지 않았다.

즉, 여기서 대공은 ‘왕’으로서 마을을 건립한 로드 플레이어한테만 붙는다는 것. 그게 각성 전이냐, 후냐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이로써 플레이어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이는 필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예상했던 대로, 마을은 비통함과 침통함, 그리고 혼란에 잠겨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들 차차 익숙해지는 환경에 그래도 살겠다고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오늘의 마을에는 그런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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