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이란 그랬다.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지만, 얕보이고 싶지 않아 모든 걸 삼켜 내야만 하는 고달픈 나이였다.
나는 덤이다. 껌딱지에 눌어붙은 먼지 구덩이다. 다행인 건 머리로는 살아남을 수 없고, 힘만으로 모든 게 평가되는 우리 동네에서 내가 눌어붙은 상대가 이욱찬이라는 것이다.
입 더러워. 나는 속으로 이욱찬을 씹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나 이욱찬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그게 가장 문제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1층 현관, 우우웅, 삐꺽삐걱 큰 소리를 내는 낡은 엘리베이터, 복도,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무의미한 자동 센서 조명.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조금은 슬펐지만, 그래서 가끔은 안도가 들 때도 있었다.
어쨌든 이욱찬과 나는 똑같으니까. 내가 공부를 잘하든, 돈이 없든, 이욱찬이 어떤 학교에 다니든 우리는 같은 양동이 속에 있었다.
그 말에 이욱찬이 비로소 웃었다. 분명 개구쟁이처럼 장난스럽게 웃는 것 같긴 한데, 억지로 안면을 구기는 것 같기도 한 미소였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 조금 슬퍼졌다.
언젠가는 비행기를 타 보기도 할까. 비행기를 타서 하늘을 날까. 그것이 설레지 않는 순간도 언젠가는 올까. 그러나 경험이 없는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야만 할 것 같다.
나는 끊임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분석했다. 음침하기도 하지.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호의와 선의라는 것도 결국엔 저에게 이득이 있으니까 베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친구라는 게 뭘까. 늘 함께 있는 것? 마음을 주고받는 것? 연애 감정까지는 닿지 않는 것? 그만큼의 신뢰와 믿음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나와 이욱찬 사이에 그런 게 있을까.
우리는 늘 불신만을 품고 살아왔다. 배운 게 그것뿐이었다. 믿음이니, 신뢰니 우리 사이엔 유치한 단어였다. 불신 역시 추상적이었지만, 신뢰나 믿음 따위보단 우리의 삶에 가까웠다.
어렸을 땐, 이 길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무섭지 않다. 공포라는 건 오직 내 상상이었을 뿐이구나, 라는 걸 느낀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이렇게 해 볼걸, 조금만 더 저렇게 해 볼걸, 하는 후회는 당연히 뒤따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래도 됐다. 그래도 되는 나이였다. 열일곱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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