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방. 적막한 사위. 이사하는 높은 툇마루로 나가 작은 종을 흔들었다. 평범한 사람은 듣지 못한다. 오직 견인(犬人)을 부르기 위해 특별히 주조된 종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하례국의 재상은. 언제나 외롭고 또 외로워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선정(善政)은 훗날에 가서야 가치를 발한다.

용은 고개를 들어 누각을 바라보았다. 만월의 달을 걸고 높이 선 재상의 처마. 그는 이사하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주인은 수인일지언정 한없이 선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한평생 수인임을 슬퍼하신 분이었다. 이 자와 같이 수인이라 묶이는 것이 주인의 치욕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우희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화려한 검날이었다. 아름다우면서 남자다웠고, 무엇보다 멋이 있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같았다. 아니, 정말로 미쳐있었다. 저 흉악한 기운과 돋아난 뿔을 봐라. 벌겋게 익은 오른손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올라온다. 흘러내린 머리채 사이로 마주친 눈은 금안이다. 적안이다. 사람의 것이 아니다.

"나는 달이 뜬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나는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 너를 보고서야 나는 달이 떴음을 알겠다. 지금이 밤인 것도 알겠다. 이제야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알겠다."

이 오랜 집착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버겁고 힘이 든다.

문틈에서. 창밖에서.
이런 만월이 뜬 밤이면 원혼들이 손톱을 길게 세워 창틀을 긁는다. 연모하는 장군을 부르며 투기를 불태운다. 허나 그들은 힘없는 망령에 불과하니, 감히 이 안으로 들어오진 못한다.

이사하는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하지만 홍수를 사람이 막을 수 없듯이. 닥쳐오는 산사태를 사람의 미약한 두 손으로 막을 수 없듯이.

미친 용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가 보는 앞에서 독을 타도 몰랐을 것이다.

청춘을 다 바쳐 너를 일으켰고 영혼을 불살라 너를 지켰다. 너의 주춧돌을 내가 놓았고 네 첫걸음을 내가 보았다.

"이것은 우리 둘의 종결이다. 더 이상 과거의 업장에 얽혀 고통 받지 마라. 네가 끊지 못한다면 내가 벗겨주마."

거울을 바라보며 하루에 세 번씩 가슴을 치며 하던 말. 나는 사람이다. 사람이다. 사람이다…….
그것은 고산지대에 살던 눈먼 할미가 매일 밤 읊어주던 비밀스런 이야기.

"나 역시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소. 나의 무(武)로 그대의 지(智)를 도우리라."

그도 바다를 지배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태생의 한계로 화룡은 바다를 지배할 수 없었다. 그가 수전까지 가능했다면 하례의 크기는 이보다 더 컸을 것이다.

복수는 복수만 낳는다. 원한은 더 큰 원한을 부른다. 전쟁은 되풀이되고 분노는 대를 이어 계승될 것이다. 이사하는 그 고리를 끊고 싶었다.

수인이라 무시하고, 어리다고 무시하고, 옳을 말을 하면 옳을 말을 한다고 무시당했다. 그런 이들과 수십 년 싸워온 이사하다.

"지금은 대국의 눈치를 보고 엎드려 있지만 어떤 이변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례가 대국이 되리라 50년 전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그러므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당당하던 보무. 햇빛에 그을린 손등위로 흘러내리는 새파란 장의. 한 손에 쥘부채를 쥐고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다 자신을 발견하자 환하게 웃는다. 커다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손짓한다. 이사하, 기다리고 있었네!

달빛 아래 눕는 조릿대 눕는 소리는 파도를 닮아 있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이사하는 창문과 함께 귀도 닫아버렸다.

그래, 너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그날 그 나루터에서 헤어질 수 있기를 바랐거늘. 너는 끝내 우리의 업장을 손에 쥐고 나를 따라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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