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는 부끄러움과 작은 기쁨, 후회와 희미한 기대처럼, 양가적인 감정들을 동시에 느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가장 끔찍한 참상 속에서 자신의 밑바닥을 직시했고, 자신의 가장 높이 날았을 때를 기억했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가결한지. 무엇을 견딜 수 있고, 무엇을 잃으면 미치는지.

애정이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젖어 있는 눈동자에 저만 비치니, 그렇게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일렁이는 촛불과 푸르스름한 달빛이 서로 다른 색으로 시야를 물들였고, 일리야는 자신의 그림자 아래에서 흐트러져 있었다.

이 순간의 기쁨은 퍽 순수한 감이 있어서, 그는 일리야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며 어린애처럼 행복감을 표했다.

일리야가 악의를 품고 있어서. 그 성정을 도무지 교정할 길이 없을 만큼, 지능적이면서도 타고나길 성악(性惡)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토록 일리야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대체 부성애가 무엇이기에, 갱생의 여지도 없는 자식을 위해 평생 지켜 온 지위와 충성조차 내던질 수 있는 걸까.

기억을 잃은 후 내가 그를 버리려고 했을 때. 건국기념일 이후 그를 피해 다니던 나를 찾아왔을 때. 호수에서 나를 구해 주던 밤에, 그리고 내가 암흑가에 다녀온 후 겨우 의식을 찾았던 순간에도.

어차피 ‘불온한 무리’의 유무는 중요한 게 아니다. 칼을 들이밀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입 아닌가? 황제는 그것을 나에게 가르쳤다.

……그 후에는 얼어붙은 용광로처럼 가슴속이 완전히 식어버렸다. 다만 거스러미처럼 남은 존재를 인식했다

대체 부성이 무엇이기에 인간을 이토록 어리석게 만든단 말인가?

가장 완벽한 제좌를 넘겨줄 수 있다. 그리하여 영원히 그의 그늘 아래에 존재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