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지금, 내게 가장 나을지도 모를 미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라 마지않을 정도로.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문제가 아니게 될 테지? 현생의 기억이 돌아올수록 너는 현생을 책임지려 할 테니까."
장난스러움이 사라진 얼굴은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현자 같기도 하고, 혹은 세상에 다시없을 사기꾼 같기도 했다.
세 살 어린 동생은 몸을 웅크리면 쿠션에 가려질 만큼 작아서, 소파 위에 앉혀 두고 봉제 인형을 가득 안겨 주면 그 틈에 숨어 있는 인형으로 보였다.
의심을 하는 것조차 그릇되다 느낄 정도로 친애하는 사람들. 그들은 단 한 번도 사르페딘의 앞에서 나쁜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왜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조차도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라 허울 좋은 변명을 할 셈인가?
절대적인 시간이 쌓아 올린 관계에 대한 질투, 열등감과 당연함이 주는 좌절감, 불안과 걱정…… 한심하기 짝이 없고, 스스로가 싫어지는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기름처럼,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구성물이 나를 밀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불에 덴 것처럼 가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강제로 ‘내’가 지워지는 것 같은 기분은, 공허와 우울로 이루어진 파도 같았다. 계속해서 내게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
나는 언제까지 이런 끔찍한 혼란과 막연함 속에서 표류해야 한단 말인가.
존재하지 않는 탈출로를 만들기 위해 맨몸으로 천장을 치는, 좌절로 점철된 삶. 그게 이 현생의 전부였다.
연회장 안의 모든 인간군상이 난파선의 파편에 매달린 채 처참한 혼란에 휩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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