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BL] 개의 난(犬의 難)
유렴 / 필연매니지먼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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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보는 사람이 많았기에 웃는 낯을 유지하며 염표에게 속삭이듯 말하는 천범과 달리 염표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로 휙 몸을 돌렸다

어떻게든 염표의 기분을 풀어놓지 않으면 식사 자리에까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여 잠시 생각하던 천범은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팔짱을 낀 채 인상을 팍 찌푸리고 있는 염표를 보며 천범은 속으로 몇 번이고 자신의 성격 더러운 고용주를 욕했다.

고정적인 인연을 만들지 않은 건 한참 된 일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애인과 헤어진 것은 6년 전이었고 헤어지게 된 계기도 어찌 보면 만족스럽지 않은 성생활 탓이었다. 물론 천범이 그 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염표에게 필요한 건 애정으로 키우는 관계가 아니라 당장 밤잠을 재워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섹스였다

목염표는 본인이 작품을 보는 눈은 뛰어났으나, 패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작업복 하나면 된다는 주의라서 그런지 지금 염표의 옷장은 다 그의 보좌관 곽천범의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벌써 천이백 번째 이런 고용주 아래에서 일해야 하나 고민하던 천범은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떠올리고는 역시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염표의 뒤를 따라 나갔다.

견오는 부랴부랴 청바지에 다리를 끼워 넣고 버클을 잠그며 문을 열었다. 몸이 땀으로 흥건했고 방 밖에 샤워실은 있는지,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몰랐지만, 늑장 부릴 여유가 없었다. 남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말 제 목숨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걸 몸소 경험했던 터라 말로 나가라고 할 때 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나마 밖에 바로 호텔 복도나 바깥 풍경이 펼쳐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

몸이 땀으로 흥건했고 방 밖에 샤워실은 있는지,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몰랐지만, 늑장 부릴 여유가 없었다. 남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말 제 목숨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걸 몸소 경험했던 터라 말로 나가라고 할 때 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나마 밖에 바로 호텔 복도나 바깥 풍경이 펼쳐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손을 떼자 표정 변화는 없었으나 귀 끝이 붉어진 백 비서가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정말 악당이 자기 손에 피를 안 묻히고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재단을 운영하는 핵심 요소는 염표가 다 갖추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돈이었고 다른 하나가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아닌 것 같아도 뼈대가 되는 건 다 염표가 잡아 왔기에 재단이 설립되고 지금까지 흔들림 없었다. 천범은 그저 짜인 틀이 굴러가도록 독려하는 사람이었다.

염표는 한 번도 견오의 스타일에 신경 쓴 적이 없었고, 염색하든 추리닝을 입고 다니든 좆 간수만 잘하면 뭘 하고 다니든 상관하지 않았다. 돈을 들여서 꾸미는 천범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물어볼 자신은 없었다.

이번에는 또 어디로 끌려가는 걸까. 차에 올라타며 견오는 심각하게 곧 다가올 제 미래를 걱정했다.

염표는 작업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무를 매만져도 떠오르는 건 시건방진 개새끼뿐이었다.

견오는 또다시 천범의 일이 끝날 때까지 방치당했다. 어차피 계약 파기면 모든 게 끝난 거 아닐까 싶어 나가려다가 천범의 매서운 시선에 슬그머니 무릎 꿇고 바닥에 앉은 게 두 시간 전이었다.

신체 일부분을 그렇게 파는 게 인권침해이고 누군가는 인간 이하의 생활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몸뚱이를 막 굴리고 아무렇게나 살아온 견오에게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충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이보다 더 개 같은 생활을 하고 싶진 않았기에 견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새로운 개를 들일 생각도, 내쫓은 개를 다시 데려올 생각도 없었다. 염표는 자고 싶었다.

지키라고 한 건 사실이었으나 흑기사가 되라고 한 적도, 염표의 건강을 챙기라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견오를 알게 된 이후 염표의 행보는 처음 보는 것들이었지만, 그걸 마주하는 견오도 만만찮은 인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며 천범은 적당히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다만 견오는 제 얼굴을 박고 있는 단단한 가슴팍에서 쉬이 일어날 수 없어 눈을 감은 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희미한 단내와 나무 냄새가 섞여 났다.

염표는 작업실이 아니라 바로 집을 향했다. 최근 행보를 생각하면 상당히 드문 일이었는데, 주인이 집으로 간다니 얌전히 뒤따르는 게 개의 본분이었다.

그건 정말 31년의 길고도 짧은 인생 동안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기이한 일이었다.

수면제 부작용이 커서 제대로 잠들지 못했으나, 장기간 복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휴약기를 가졌다. 마취해서 강제로 재울 수도 없었으니 날카로워진 신경은 옆에서 아무리 달래주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원래 하던 일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죽지 않을 정도로 벌어먹고 살던 당시의 생활과 지금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제멋대로에 폭군이나 다름없는 목염표에게 이런 울렁거리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계절이 한 번 바뀔 동안 견오도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했고 결국 인정해야 했다.

염표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없는 사람 취급 하는 건 상처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젊고 잘생긴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갖는 건 너무도 싫었다.

염표를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과 목소리는 단순히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로 보기엔 어려웠다

"주워주신 보답으로 주인님께 봉사 좀 해드려야죠. 또 버려지긴 싫으니까."

꿈을 꾸지 않았다. 정확히는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그저 어둠만이 있었고 그 어둠 속에서 깰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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