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일상의 소요 속에 묻힌 채 살아가며 이젠 저 담 밖과 안의 경계가 명확해졌고 그 선을 긋는 데에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아니, 단지 기만에 익숙해진 건지도 모른다.
단둘이 살다 보니 동화되어 가는 것과는 별개로 그와 자신이 근원적인 부분에서 많이 닮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던, 그래서 늘 신경을 곤두세운 채 버티는 게 피곤해 차라리 혼자인 게 편했던 과거와 달리 너무나 평화로운 지금은 혼자인 걸 외롭다고 느끼고 있다.
무뎌졌다는 건, 그만큼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거니까.
너무 무뎌져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이렇게 쓸데없는 기 싸움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화해하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성격을 제외한 모든 걸 갖고 태어나 그 덕에 뭐든 자기 마음대로 하고 편하게만 사는 사람이니 이 사람에게도 불편해도 참아야 하는 한 가지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공평하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
오늘만은 저 지긋지긋한 비가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가 좋아진 건 아니지만 그와 함께할 때의 비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아주 가끔뿐이지만.
대부분은 너한테 관심 없어. 분명 그의 말대로, 자신은 타인에게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스쳐 가는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건 잘 알고 있지만 과연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남자에게도 관심이 없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어차피 그와 자신의 관계에 끝이 온다는 건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고 그 끝이 절대 좋을 수 없다는 것 역시 너무 명확한 진실이기에, 지금은 그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현실 도피일 뿐이라도 그게 자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간 치열하게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며 싸웠지만 어떻게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그 길고 지리멸렬한 전쟁 끝에 자신은 너무나 지친 채였다. 더는 생각을 하는 것도, 뭔가를 시도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젠 편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이제 자신이 진짜 지우고 싶었던 게 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 역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간 평화로운 일상에 익숙해져 잠시 기억의 저편에 묻어 둔 진실들이 흘러나오며 결정의 시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때처럼 도망쳐 버릴지 스스로 선택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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