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과 무릎들 -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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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20 만나려면 족히 1시간은 지하철을 타야 하고 그나마 약속 잡기도 힘든 친구들은 관계의 자양강장제일지언정 일상적 밥은 되기 어렵다. 게다가 친구도 별로 없다. 급할 때 개를 맡기고 아플 때 먹을 걸 나눠주는 이웃을 갖고 싶었다.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보이는 웜톤의 드로잉 표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는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이는 시골 책방이란 공간. 겉모습과 소재만을 보고 지레짐작으로 부대껴 사는 사람들 사이 시골의 정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글은 생각 외로 너무나도 날것이었다. 솔직하다 못해 내면의 열등감이나 분노, 서운함, 쪼잔함마저도 죄다 내어놓는다.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책 속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으며 웃어대다 보면 독자마저도 저자와 함께 은모래해변을 걸으며 시답잖은 수다를 떨고, 고사리를 넣은 빵을 먹고, 제값을 주고 책을 사며 자본주의 사회의 이단아가 되어 본 것 같은 착각이 솟아오른다(그리고 아마 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그런 생활도 사랑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책방과 무릎들』이 심각하게 메마른 책은 아니다. 이 글은 충분히 따뜻하다. 세월호 사고나 밀양 송전탑 사태 등 우리 사회를 스쳐간 일들과 거기에 따라온 연대를 가감 없이 글에 녹여내고 언급한다. 이 묘한 시골 공동체는 죽어도 같이 죽자고 불타오르지는 않지만 밥 굶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한다. 모안대나 새박사, 콩풀과 경숙 씨 등 작가의 주변에서 ‘성기게 엉긴’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서로를 먹여살린다. 누군가가 먹여 살려 준 그들이 작가를 먹여 살리고, 작가는 함께 사는 반려동물들을 먹여살리고. 그렇게 모두가 또 하루를 살아내고 시간이 흘러간다.

 

p.191 나는 책방을 사랑해서 내가 이 일을 감수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책방은 내가 인정받기 위한 도구였을지 모른다. 책방을 잃은 나는 실연한 기분이었다. 책방을 잃은 상실감이 아니라 내가 책방을 사랑한다는 상상을 잃은 상실감이었다.

 

막연하게 시골살이를 권장하지도 않고, 자연과 시골이 모든 외로움을 해결해주노라 낭만적으로 외치지도 않는다. 책방에서 돈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시골 마을이 오래오래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번지르르한 빈말도 없다. 저자는 끊임없이 고뇌하고, 외로워하고, 때로는 분노하거나 쪼잔하게 치밀어 오르는 화를 표출한다. 결국은 책방을 떠나고 인간AI, 준과 멀어져버린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을 변호하고 싶게 되기 마련인 게 사람인지라, 개인적으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두렵다’고 솔직하게 쓸 수 있는 저자의 기세가 부럽다. 콩풀과 저자는 아무런 노력 없이 존중받는 사람들을 향해 부럽다, 부럽다, 하고 연신 말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화해하고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연신 부럽다고 중얼거렸다.



 

『책방과 무릎들』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같이 살자니 힘들고 떨어져 살자니 걱정되는 늙고 병든 부모님도, 어정쩡하게 화해해버려 피해 다닐 수도 없지만 도로 편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사람도, 열 번 돌아서도 열한 번 나를 먹여 주는 어설픈 공동체도 저자의 곁에 남아있다. 어쩌면 함께 살아가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종일 치열하게 모든 것을 같이하는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저자의 말대로 ‘급할 때 개를 맡기고 아플 때 먹을 걸 나눠주는 이웃’일지도 모른다. 그 이웃들이 또 하루 누군가를 먹이고, 누군가를 살린다.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얄밉고 적당히 사랑스럽게. 방 구하기도 힘들고 외지인에게는 날을 세우고 편의점 하나가 유일한 구원인 시골, 이상하게 그런 시골로 훌쩍 떠나 연고도 없는 책방을 찾아 보고 싶은 책이었다.

 

 

* 출판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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