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썸머 에디션)
이디스 워튼 지음, 민지현 옮김 / 머묾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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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101 눈부신 햇살과 아침의 일부가 된 듯한 환희가 가슴 가득 차오르자, 지난밤의 비참했던 심정은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혈관 속에서 사랑이 춤추고, 길 아래쪽에서는 루시어스 하니가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데,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딸인지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리얼리즘을 기대한다면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이디스 워튼의 여름은 철없고 감정적인 소녀 채리티의 사랑을 통해 당대 여성의 삶과 소녀의 내밀한 속사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마치 여름 초록의 생기처럼 피어나는 정열적인 사랑이 워튼 특유의 시적이고 낭만적인 문장을 만나 더욱 불타오르며 그들의 젊음을 돋보이게 만든다. 불꽃처럼 끓어올랐다가 증오와 절망으로 참담해지기를 반복하는 내면에 대한 고찰, 그가 품은 사랑에 대한 솔직하곧 대담한 묘사는 독자에게 탄식과 설렘을 동시에 선사한다.

 

사실 21세기의 시선으로 읽으면 다소 당황스러운 구석이 있는 책이다. 대부분의 젊은 여성 독자가 로열의 청혼에 여러 번 질색하며 채리티가 하니와의 사랑의 도피에 성공하기를, 또는 채리티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이 100여년 전 전쟁 중에 쓰여졌다는 걸 떠올려보면 여름이야말로 그간 누구도 조명하지 않았던 어린 여성의 성과 사랑, 개인의 삶, 자유의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누구도 채리티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그는 그 시대의 여성으로서 원하는 만큼 하니를 사랑했고, 종래에는 자신과 아이를 지켜줄 로열이라는 현실적 결단을 내렸다.

 

p.125 익숙한 솜씨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두 손을 보는 순간 채리티는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자신이 느꼈던 불안한 감정과 그 근원이 되었던 사람 사이에 놓인 불균형이 비로소 보이는 것 같았다.

 

이디스 워튼이 상당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채리티 로열이라는, 이토록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채리티는 당시 사회가 요구했던 여성성과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당돌하고, 자유롭고, 가감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때로 어쩔 수 없이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수치스러워하곤 하면서도 그 굳센 심지가 꺾이지는 않는다. 시골, 산 위의 야만적인 빈민 집단 출신,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삶이 워튼의 펜촉을 만나 강렬한 여름 햇살같은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뉴욕의 상류층을 사정없이 파헤쳐 오던 날카로움이 주제부가 다소 다른 여름에서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여름의 정열적 사랑을 묘사하는 순간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서 독자마저도 함께 설레고, 여름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에는 복잡한 감정이 몰아치게 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채리티 로열이다. 하니도, 로열도, 리프도 남자 주인공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직 채리티만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현대의 시각으로 채리티의 삶을 평가하기보다 190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워튼이 말하고자 했던 여성의 자유로운 사랑, 미혼모, 계층적 한계에 대한 고발에 주목해 읽으면 글 속으로 더 깊게 다다르지 않을까 싶어진다. 여름 햇빛의 조각같은 표지 홀로그램의 무지개를 자꾸 매만지게 되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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