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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공포
이종산.정보라.허진희 지음 / 스프링 / 2026년 6월
평점 :

#도서제공
p.43 사람이 죽어 나간 베이글 가게. 빵집에서 일하다 죽는 사람들. 공사 현장에서도 사람들이 일하다 죽었고, 창문을 닦거나 엘리베이터를 수리하다가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거나 아직 고등학생인 사회 초년생도 많았다.
친구들과 종종 우스갯소리로 귀신보다 사람이, 사람보다 벌레가 무섭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호러’라고 하면 귀신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혼자 사는 집에 귀가했을 때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벌레, 귀신, 사람 중에서 아마 가장 안 무서운 것이 귀신이다. 『태양 공포』는 그런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앤솔로지다. 도시 괴담을 소재로 하는 호러 앤솔로지지만 급박한 귀신 출몰 에피소드나 심한 텍스트고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약간은 사람이 아닐 주현 포함)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글을 빌려 사회를 말하는 작가가 좋다. 표제작인 이종산의 「태양 공포」는 주인공 주현이 부모를 잃으면서 시작된다. 어른이라고 불릴 나이가 되기도 전에 일하다 죽는 아이들, 그리고 부모 없이 사회에 덜렁 내쫓겨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청년들. 주현은 흡혈귀 혼혈이라는 특이한 설정을 가지지만 그의 모습은 마치 가정 밖 청소년이나 보호종료아동의 힘겨움을 떠올리게 한다. 「탈출기」는 몸을 던져서까지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피해자가 도리어 가해자 취급을 받는 안타까운 현실을, 「피터와 모」는 가정 내의 남아선호, 외로움이 사람을 좀먹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들이야말로 귀신이나 저주보다도 우리 사회에 더 깊게 뿌리박힌, 실체 없는 공포이자 호러일 것이다.
p.101 그녀의 인생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열심히 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화면 뒤에 숨은 채 ‘잼있으니까’ 자신의 삶을 망쳐 놓았다.
『태양 공포』에 실린 세 편의 글들은 도시 속의 절실한 고독을 조명한다. 주현과 그녀, 남지우는 모두 어느 섬의 골짜기 외딴 집 따위가 아닌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저마다의 고독을 갖고 있다. 남들과 다른 존재여서, 국가와 사회가 충분히 보호해주지 않아서, 자신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가족들 속에서 살아와서. 마지막 단편 「피터와 모」를 읽고 나면, 만약 지우가 주현과 그녀를 보았더라면 아마 그들의 어깨에도 어두운 덩어리가 붙어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각 단편들은 저마다 공포스럽게 연출된 장면을 가지지만 글 속에는 더한 공포들이 숨어있다. 주현이 피를 빠는 장면보다는 사람을 죽이고도 돌아가는 공장이 더 끔찍하다. 그녀가 징그러운 환각 속을 헤매는 것보다 사이버 성범죄에 아무런 대처조차 되지 않는 현실이 더 기괴하다. 피터와 모가 몸을 자르는 것보다 어린 딸에게 어깨의 어둠을 만들어 준 하란이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까지도 그 어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독자를 괴롭게 한다.
그러나 주현은 살아갈 것이다. 그녀는 살아남았고, 지우는 그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로 한다. 우리는 이 도시 속에서 살아가면서 주현을, 그녀를, 지우를 만나게 될 것이다. 『태양 공포』는 그렇게 우리 사이를 살아가는 이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를 조명한다는 점이 가장 도시괴담스러운 부분이었지 않나, 싶어진다. 차분하고, 고요하고, 스산하게.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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