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구직자 - 그리고 소설가 정수정의 화요일 다소 시리즈 5
정수정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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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13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부끄러울 건 없는데, 나는 3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럼에도 아직 소득이 없을 뿐인데. 근데, 진짜로 열심히 노력한 건 맞아? 누가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아닌데 혼자 주눅이 든다.

 

너무 좋은 책이었던 동시에 너무나도 괴로운 책이었다. 만약 내가 구직 중이거나 실직 상태였다면 절반도 못 읽었을 것만 같다. 최근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느낌을 없애기 위해 경력보유여성이라고 고쳐 쓰자는 담론이 있었다. 누군가는 단절이 당사자에게 주는 부정적 어감이 없어 좋다고 찬성했고 또 누군가는 사회가 경력을 단절시킨사실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 같다며 반대했다. 연쇄 구직자를 읽는 내내 그 담론을 곱씹었다. 결혼을 안 해서, 결혼을 할 것이라서, 이미 결혼을 해서 취업시장에서 밀려난 여자들. 지수는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는 자신의 경력이 그렇게 단절될 줄 몰랐을 것이다. 결혼 전에 재취업을 하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도.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담담하다. 극적으로 좋은 일이 생기거나 지나치게 나쁜 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지수가 갑자기 좋은 직장에 턱 붙는 일은 없다. 서나가 시원하게 파혼을 선언하거나 다솜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평생의 우정을 선언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게 연쇄 구직자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번쯤 듣거나 겪어 보았을 상황들이 이어진다. 길 건너 아파트에 살 것 같은 평범한 누군가의 삶을 뚝 떼어 소설로 엿보고 있는 것만 같다. 담백한 일상, 모두가 겪을 수 있는데도 또 어떤 집단에게는 평생 자신과 상관없을 이야기. 간간히 슬픔 마음을 다잡으며 끝까지 읽어나갔다.

 

p.106 그사이 딸기 스티로폼에는 할인 바코드가 붙어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붙은 가격을 봤다. 1만 원. 나는 스티로폼 상자를 집었다. 조금씩 무른 부분이 보였다. 다시 보니 알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도 같다. 다는 다시 딸기 스티로폼을 내려놓고 마트를 나왔다.

 

종윤은 그다지 나쁜 남편은 아니다. 서투른 집안일에 대해 말을 하면 고치기도 하고, 지수가 아플 때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뭔가를 배워 보려 하자 기뻐하고 응원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좋은 남편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힘들어진다. 닭죽을 끓일 줄 아는 종윤이 우유 팩을 씻지 않고 버리는 건 정말로 몰라서일까, 아니면 그게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 종윤이 아니라 지수가 아팠더라도 종윤이 회사를 포기했을까. 연쇄 구직자에 나오는 모두가 어딘가 이렇게 켕기는 모습들을 갖고 있다. 심지어는 주인공 최지수조차도 때때로 그렇다.

 

세일 품목이 다 떨어져 지수가 딸기를 사지 못하는 순간보다도, 돌아가 딸기를 쳐다보며 생각보다 물렀고 크지도 않다며 이런저런 합리화를 거쳐 도로 내려놓는 순간이 더 슬펐다. 이후 종윤의 회사 복지 포인트로 딸기를 살 기회가 다시 생겼을 때도 지수는 딸기 대신 쌀을 택한다. 지수의 세상은 회사를 나온 이후로 점점 좁아져서 이제 딸기라는 건 그의 세상 바깥에 있는 항목이 된 것이다. 어떤 가난이나 불안정함은 그렇게 사람의 세상을 점점 좁힌다. 경력 단절 여성들의 세상은 그런 과정을 거쳐 아주 좁아져, 어느새 집의 주방 식탁 한 켠에 불과하게 된다. 슬펐다가, 위로가 되었다가, 또 괴로웠다가, 또 명치 속을 오래오래 파고드는 글이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지수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기를 바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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