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 드그다 읏따읏따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6
김멜라 외 지음, 최다영 해설 / 열림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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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92 나의 옛 남자 친구들은 언제나 자신들에게 나를 완전히 제압할 힘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드러낼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언제나 그렇게 했다. 자신들이 나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데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자기가 좋은 남자이기 때문에 나에게 그 힘을 휘두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열림원에서 출간하는 림 소설집이나 수상작품집 같은 종류의 단편집들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단편에서는 나와 같은 세대를 살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펜으로 써내려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주제는 신선하고 강렬하다 못해 때로는 톡식하다고까지 느껴지고, 글이 받을 평가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이야기를 반드시 하는 것에 집중하는 날것의 소설들이 페이지를 모두 넘긴 후에도 가슴을 연신 뛰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드그다 읏따읏따를 향한 기대도 굉장히 강했다. 특히나 표제작인 드그다 읏따읏따의 김멜라 작가는 읽을 때마다 특유의 발랄한 어휘로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짚어내는 놀라운 표현력에 감탄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폈다.

 

드그다 읏따읏따에 실린 단편들의 공통된 주제는 우정이다. 독자는 우정이라는 키워드를 마주쳤을 때 단순히 오래된 친구 간의 우정만 상상하기 쉽지만, 사실 우정이라는 것은 어느 관계에서나 성립한다. 피루엣의 규오와 노아처럼 동경을 통해서도, 또는 드그다 읏따읏따의 양홍과 찬나처럼 부재한 친구를 향해서도, 심지어는 선선한 사이의 양지와 연주처럼 세입자와 집주인이라는 갑을 관계에서까지도. 다섯 개의 단편이 다양한 우정의 모습을 작가 각자의 문체로 다채롭게 그려낸다. 매 이야기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기도 한다.

 

p.104 그럼에도 그 공포를 뛰어넘을 만큼 갑갑하다면. 포말이 일 때마다 사이다 거품처럼 샤, 하고 퍼졌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파도 소리에 맞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가 당장이라도 필요하다면. 그럼 뛰쳐나갈 수밖에 없지.

 

피루엣은 분량은 짧았지만 상당히 인상깊었다. 트랜스남성인 규오가 자신이 갖는 신체적 한계로 인해 소위 말하는 알파메일인 노아에게 갖는 동경이 드러나는 동시에 그런 신체적 특성이 서술자인 가 규오를 비교적 안전한 남자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 커다란 아이러니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규오가 갖는 소수자성을 달가워하는 의 시선은 규오를 타자화하는 것처럼 여겨지거나 성소수자 차별적으로 읽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 밖의 독자가 여성이라면 를 힐난하지 못할 것이다. 연인이나 배우자를 포함하는 가까운 남성에게서 신체적 위협을 받는 경험, 이 단편에서 발췌한 문장처럼 내가 너를 봐주고 있다는 인식을 느껴본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몸의 기능을 두고 순위를 매기는 스포츠가 비윤리적이라고 말하는 규오가 그런(노아 같은) 남자들이라는 표현을 쓸 때도, 노아가 규오를 두고 섬세하고 다정한사람이며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할 때에도, 독자는 비슷하게 기묘하고 찜찜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가 없다. 이토록 짧은 글 안에서 이렇게 사람을 소용돌이치게 만들 수 있는 서장원 작가의 필력이 경이로웠다.

 

오래 품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다. 그럼에도 단편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이 남는다. 어쩌면 우정이란 우리가 손쉽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인간관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우정에 휘둘리고 만다. 어떤 우정은 지독하게 깊고 또 어떤 우정은 별 것 아닌 것처럼 가볍다. 그렇게 늘어선 우정들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본 것 같은 글들이었다. 언제나 열림원의, 작가들의, 젊은 문학의 건승을 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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