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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테스트
황인규 지음 / 산지니 / 2025년 7월
평점 :

#도서제공
p.112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종교의 영역을 점점 빼앗아온 과학의 역사 아니었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 (중략) 어쩌면 인간의 운명도 과학에게 당한 종교와 같은 꼴이 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하네.
소설에서 캐릭터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배경이 되는 세계관이다. 최근의 주목받은 한국 소설들은 대부분 그 배경이 현대거나 가상의 근미래였다. 독자의 이입이 쉬워 큰 설명이 필요하지 않거나, 어떤 설명을 가져다 붙여도 틀리지 않는 자유의 공간인 셈이다. 그러나 황인규의 소설은 조금 다르다. 『고스트 테스트』에 실린 네 개의 작품은 저마다 다른 시간선을 갖고 있다. 매 작품의 배경이 때로는 어떤 미래였다가, 때로는 아주 먼 과거가 된다. 거침없는 그의 펜촉이 독자를 생전 본 적 없을 공간에 뚝 떨어트려 놓는다.
책의 포문을 여는 작품 「미지의 항해」는 17세기 동인도회사의 브레다호에 탑승한 선원 한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케이스가 아니면 현대의 독자가 17세기 항로 개척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기는 어렵다보니 책 내의 서술만으로 이입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신기하게도 페이지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배의 갑판 위에 서 있거나 눅눅한 선실에 있는 것 같은 기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고증은 탄탄하고 묘사는 생생하다. 생전 겪은 적도 없고 겪게 될 리도 없는 배 위의 반란이나 폭풍우에 마음을 졸이며 그들의 항해가 어떻게 흘러갈지 두근두근 궁금해진다.
p.200 완연한 밤이 되었습니다. 우주 저쪽의 암흑과 지구의 밤이 대비됩니다. 같은 어둠이라도 우주는 모든 걸 빨아들일 듯이 농도가 진한 반면 지구의 어둠은 엷고 따뜻해 보입니다. 별들은 지상에서 보는 것보다 수백 배쯤 밝고 영롱합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만남」과 하늘을 날아 우주까지 다다르려던 사람들의 편지를 담은 「인류 비행에 관한 몇 개의 보고서」를 읽고 있으면 작가의 방대한 지식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페이지를 따라 달리는 내내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배경 위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쌓아올린 대사와 상황이 그려내는 거대한 세상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해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고스트 테스트」가 밋밋한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표제작은 언제나 표제작인 까닭이 있다. 프로그램이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게 두려우면서도, 그렇게 인간처럼 생각하고 사유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그걸 아무렇게나 삭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이 들었다. 구 박사가 K에게 ‘모비딕을 삭제하면서 누군가의 생명을 앗는다는 느낌이 없었는지’ 물을 때 독자도 함께 그 의문에 잠긴다. 자아가 있는 프로그램을 삭제한다면, 그 자아를 죽이는 일인가?
『고스트 테스트』는 새로운 플롯과 배경을 다수 접하게 해 준 책이지만 낯설거나 껄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고 놀라웠다. 땅 위의 전투부터 바다 위의 항해와 하늘과 우주를 나는 이야기까지, 어떤 배경도 소화해내는 작가의 필력은 물론이고 작품 틈새마다 엿보이는 철학적 고찰, 도전과 희망에 대한 응원,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사유가 모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벅찬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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