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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할 기적은 무한하기에
이하진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8월
평점 :

#도서제공
p.35 시간은 삶의 증명이었다. 사람을 만나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감정을 나누고, 함께 일하고, 여가를 누리고, 여유를 느끼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지며, 세상과 사람이 이어지는 모든 순간은 시간과 함께였다.
SF 소설들을 읽다 보면 때로 과학 전공자가 집필한 SF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런 책들은 대체로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물리 법칙을 얘기하거나 자명한 과학적 사실을 살짝 비틀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새로운 공간을 제시한다. 『우리가 마주할 기억은 무한하기에』에서 지구가 가벼워지는 일이 발생하거나 초거대 AI가 등장하는 것처럼. 섬세한 세계관을 담은 책 앞에서 독자는 가장 기초적인 의문에 마주친다. 왜 과학책이 아니라 문학책을 썼을까? 과학자가 문학의 형태를 빌려 세상에 해야만 하는 말은 무엇일까?
소설 속의 세계들은 저마다의 형태로 재난이나 멸망을 맞이하고 있다. 지구가 가벼워져 공전궤도를 이탈해버리고, 사람을 죽게 하는 유독한 바이러스가 퍼진다. 시간이 멈춘 도시가 재난으로 취급받기도 하고 파괴를 피해 달아나 지하에서 투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속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삶을 이어나간다. 묵묵하게 그냥 살아가기도 하고, 재난을 벗어날 방법을 찾거나 오히려 정면으로 맞설 용기도 갖는다. 단편을 읽을 때마다 작가가 SF라는 장르를 통해 현실의 어떤 이슈를 말하고자 하는지 어느 정도 눈에 보여서, 때로는 분노하며 때로는 슬픈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p.188 때문에 바이러스가 없는 청정 지역인 궤도 콜로니로 향하는 배송은 원칙적으로 전량 로봇이 담당해야 했다. 하지만 실태는 지금 보이는 바와 같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 기계보다 사람이 저렴하니까. 기계가 상하는 값보다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값이 싸다는, 경영 논리였다.
때로 어떤 글들은 다정한 목소리를 하고서 고발의 모양을 띠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저 외로운 궤도 안에서」가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노조, 파업, 투쟁, 그리고 사람의 목숨보다도 어떤 금전적 손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거대 기업. 이 글은 소설이지만 연일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들과 큰 차이를 가지지 않는다. 주인공을 향해 관리자가 하는 말들은 뉴스 댓글 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말들이다.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러게 배가 불러선 파업을 왜 하느냐… …. 주인공은 그런 말에 굴복하고 명령을 따르는 대신 배송기사라는 자신의 특성을 통해 투쟁을 이어간다. 설령 그 일이 자신을 해치게 되더라도.
어쩌면 세상은 이하진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과 같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에도(그게 멸망이나 죽음이더라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끝내 나에게 주어진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이나 존엄성을 내려두지 않고 나의 세계를 움켜쥔 채 이 잔혹한 세상에서 연대와 투쟁을 계속해나가는 것.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계속 흘러간다. 책은 재미있다. 그러나 이따금 괴롭고 눈물이 나거나, 소름이 돋고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그게 시대를 쓰는 문학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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