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제공

 

p.59 불행을 통과한 인간에게는 질문이 찾아온다.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오는 질문은 불행한 인간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불행한 인간은 대체로 자신이 겪은 불행으로 말미암아 질문에 대답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펼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오랜만이다. 바쁜 숏폼 시대에 발맞춰 문학계도 단편들이 주로 인기를 얻는 추세지만, 그런 시대이기에 더더욱 장편의 가치를 알아주는 한겨레문학상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말뚝들은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 장이 갑자기 납치를 당한다는 다소 특이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얼핏 보면 갑자기 나타난 말뚝들과 장의 삶은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페이지가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말뚝들은 장에게로 점점 가까워진다. 같은 나라로, 같은 도시로, 회사로, 집으로. 마치 말뚝이 장을 찾아오는 것처럼.

 

이야기의 본질을 깨닫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온 장면들이 다시금 벼락처럼 머릿속으로 찾아온다. 광장에서 말뚝을 보고 이유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 그리고 그걸 백에 넣어서 치워버리는 정부. 처음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말뚝을 백에 넣어 치우는 장면에서는 사실 이렇다할 특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로 달려가면서 그 장면을 곱씹으면 어쩐지 소름이 돋는다. 슬퍼하는 국민들에게서 슬퍼할 까닭을 빼앗아가고, 사람들은 왜 슬퍼했는지도 모른 채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떤 참사들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그렇게 잊히고 만다.

 

p.248 누군가에게 말뚝은 전복된 선박의 선원이었고 부모였다. 바다에 가라앉은 자식이었고, 길에서 죽은 청년이었으며, 정리 해고로 생명줄이 끊긴 노동자였다. 그게 전부 살아남은 사람의 기억으로 쓰여 있었다. 지우는 사람이 기록하는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3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의 구석구석을 스쳐가는 문장들에서 독자들은 같은 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 참사가 남긴 일종의 트라우마다. 바다에 가라앉은, 길에서 죽은, 정리해고를 당한……. 그러나 슬픔은 빚과 같아서 묻어 놓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자가 붙어 더 커진 슬픔이 되어 돌아온다. 말뚝들은 그렇게 장의 삶에, 한국 사회에 나타났다. 정부가 묻어 두고 감춰 둔 슬픔들이 말뚝이 되어서 빚을 진 사람들의 거실까지 침입했다. 그들은 뉴스에서 집계되는 아무개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개인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 주고 저승을 건널 삯을 쥐어주고 그들을 위해 실컷 슬퍼하고 울었을 때에야 비로소 말뚝은 사라진다.

 

왜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장의 말에 데보라는 되레 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냐고 묻는다.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라고. 그 말은 마치 책 바깥의 독자들에게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불행을 겪은 누구나 장처럼 생각할 것이다. 왜 하필 나에게?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나 데보라의 말처럼 어떤 사고는, 어떤 죽음은, 어떤 슬픔은 그냥일어난다. 말뚝들 중 그 누구도 내가 언젠가 말뚝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은 동시에,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어 합당한 사람은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누구나 일상을 평온하고 안전하게 영위할 권리가 있다. 노동자든 학생이든.

 

자동차 납치와 시랍화 된 시신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소재들이, 백종원의 역전우동이나 배철수의 라디오라는 지나치게 일상적인 이야기와 맞닿아 순식간에 몰입도를 올린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데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도록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대단한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말뚝들 #김홍 #한겨레 #한겨레출판사 #한겨레문학상 #공삼_북리뷰 #서평 #서평단 #서평단리뷰 #한국소설 #장편소설 #책리뷰 #책추천 #책스타 #책스타그램 #북리뷰 #북스타 #북스타그램 #소설추천 #신간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