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과 이혼의 연대기 - 2025 8월 책씨앗 문학부문 추천도서
정광모 지음 / 산지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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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66 어둑한 빛을 따라 웃음의 테두리가 전해져 내게로 건너왔다. 봄이라도 아직 어둑하군. 나는 웃음의 자락을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때로 현대의 SF와 사실주의는 상당히 닮아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인물들은 비현실적인 세상에 존재하면서 때로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행동한다. 또는 현실적인 세상을 배경으로 굉장히 비현실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에 실린 단편들도 그런 틈새가 잘 드러나 있었다. 어느 단편에서는 로봇이나 인간 멸종을 그려내기도 하고 어느 단편에서는 난민이나 장애인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첫 이혼이 굉장히 재미있었고 가장 매력적이었다. 에이든의 행동이나 벨리사의 감정, 로봇(안드로이드?)의 인간적 권리를 어디까지 보장해주어야 하는지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와중에도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에이든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치는 시민단체들의 묘사였다. 로봇을 질투하고 시기했으면서 막상 로봇과 이혼하기 싫은 늙은 여성이 나타나자 그 로봇에 이입해서 구해 주고 싶어한다거나, 그걸 위해 로봇을 만든 회사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남성 모욕 사례를 찾아내는 일부 남성들의 단체. 이 단편은 SF가 아니라 필히 리얼리즘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그 페이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한참이나 깔깔 웃었다. 이렇게 세련된 풍자라니! 정광모의 글은 시민 복지를 위해 광장에 현수막으로 걸려야 마땅하다.

 

p.134 우리는 지구에서 태어났으나, 지구와 함께 살지 못하고 지구를 해치는 종족이 될 것입니다. (중략) 동시에 그렇게 뛰어난 사피엔스가 멸종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멸종을 기록하는 방법은 흥미로운 동시에 다소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느 지구의 미래, 긴꼬리원숭이족이 진화해 긴꼬리족이 문명을 이룩한다. 연구원 카말이 고대 지성체는 짧은 꼬리나 맨 엉덩이였을까 궁금해하는 순간부터 도자기 판을 해독하는 대목까지 매 문장마다 소름이 돋았다. 사실상 환경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아주 고리타분하고 오래된 주제인데도 정광모는 이 단편을 통해 너무나도 세련된 방식으로 그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 단편집에서 첫 이혼, 휴먼 장르, 멸종을 기록하는 방법SF로 분류되겠지만 그 어떤 리얼리즘 소설보다도 현실을 날카롭게, 그리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글이 깔끔하고 쉽게 읽힌다. 오랫동안 여러 번 파헤쳐야 하는 글도 좋지만 SF는 쉽게 읽히고 오래 생각나는 글이 좋다고 생각한다.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는 흥미롭고 재미있다. 동시에 섬세하고 다정하다. 다시 곱씹으면 굉장히 직관적이고 날카롭다고 느껴질 만큼 현실과 닿아 있다. 사람을 출신이나 나이, 성별 따위로 판가름하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임을 알지만, 솔직히 말해 젊은 여성 독자들은 글을 읽을 때 이 온다. 이건 남자가 쓴 글이구나이건 기성세대가 쓴 글이구나. 그러나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는 소위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는 지역 출신 기성세대 남성의 글이라고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트렌디했다. 그가 말하는 SF와 리얼리즘은 타인의 불행을 전시하거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으로, 광장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가는 것을 지향한다. 그 발걸음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차기작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서평을 마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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