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머
모래 지음 / 고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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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167 필립은 엄마와 멀어졌다. 필립은 엄마가 징그럽고 미웠지만, 끈적한 정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느 날 뚝하니 다 말라버렸다. 그렇게 말라버린 게 꼭 싫기만 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외로웠다.

 

흔히 동양 오컬트는 일본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드리머를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불교와 힌두교 사상을 토대로 하는 잘 짜여진 오컬트 세계관이 금세 독자를 휘어잡는다. 사이비 종교인 가리교, 그리고 그 종교와 관련된 낡은 수첩에 홀린 네 명의 친구들, 욕망에 휩싸여 꿈과 현실을 오가는 이야기.

 

1부에서는 차근히 인물들의 속사정과 세계관을 쌓아올려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고, 2부부터는 속도감 있게 몰아친다. 군더더기 없이 절정으로 치닫은 이야기가 3부에서는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인물이 네 명이나 등장하고 각자의 시점을 보여주면 헷갈리거나 집중이 흐려질 법도 한데, 글이 매끄럽고 인물들이 각자 입체적이어서 마치 기철, 필립, 명우, 여정이라는 네 인물이 정말로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p.336 여정은 맹렬하게 내장이 불타오르는 것 같다. 그런 사랑, 정말 알고 싶나? 알고 싶지 않은데, 사실, 이미 알고 있잖아? ? ?

 

문장들이 정확하면서도, 너무 첨예하고 날것이라 때로는 내면의 어떤 트리거가 건드려지는 것처럼 불쾌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흡입력 있는 스토리에서 떠날 수가 없어서 등줄기에 소름이 돋은 채로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긴다.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건 모래 작가가 오컬트 작가로서 타고났다는 게 아닐까?

 

오컬트는 생각보다 쓰기 힘든 장르다. 오랜 기간 장르를 사랑해 온 팬덤층이 확고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팬덤의 눈이 높다. 철학은 물론이고 기반이 되는 종교나 문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세계관을 글로 옮겨 독자에게 전달하기까지 구멍 나는 부분이 없어야 독자도 그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드리머의 모래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드리머는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 같다. 영상매체가 활자매체보다 특히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화처럼 눈앞에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듯이 생생하다는 뜻이다. 깊이있는 작품이라서 아마 영상화가 되어도 흥행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바하파묘, 검은 사제들의 흥행을 보며 한국의 오컬트가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드리머가 한국 장르소설의 새로운 판도를 열어 보길 기대한다.

 

* 출판사 고블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드리머 #모래 #고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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