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퇴근길
ICBOOKS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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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324 그렇게 그는 한참 동안 자신을 위로해 주는 그 노래를 들으며 원 없이 새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원 없이 한숨을 토해 낸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고 대리는 아내에게 회사에서 잘렸다는 말을 할 수 없어 가짜 출근을 하게 된다. 전철을 타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기도 하고 도서관을 가기도 하며 수상한 퇴근길을 이어가다가, 무급휴직이라는 거짓말로 가짜 출근을 그만둔 후에는 친구에게 도배 일을 소개받아 나가기도 한다. 일당은 몇 만원밖에 안 되는 수준이지만 한 푼이 아쉬운 고 대리는 계속해서 도배일을 할 수밖에 없다.

 

여자의 시선에서, 솔직히 말해 고 대리라는 캐릭터는 정말 인간적으로 도저히 호감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고 대리의 아내, 분리수거남, 꽃집 주인 등 좋은 사람들과 대비되어 이야기가 흐르면 흐를수록 더 정이 떨어진다. 주인공 고 대리는 소위 말하는 하남자에 가깝다. 실직해서가 아니다. 그건 고 대리의 탓이 아니니까. 잘린 걸 아내에게 말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자존심을 떠나서 그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고 대리가 하남자처럼 그려지는 건 그의 행동과 말에서 끊임없이 자격지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쪼잔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마음속으로 남을 쉽게 얕보고 헐뜯는데다 결국 진심이 아닌 막말로 아내에게 상처를 준다. 비유하자면 김첨지식 캐릭터에 가깝다. 휴대폰을 고치지 않은 건 본인이면서 병원에서 아내에게 심한 말을 쏟아낼 때는 정말 갑갑해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러나 의외로 그런 점이 고 대리를 더 현실적인 인물로 만든다. 작가가 고 대리의 찌질함을 이리저리 포장하기보다 그대로 독자 앞에 날것으로 내던져 보임으로써, 고 대리는 미디어 속 완벽하기만 한 남자 주인공이 아닌 철없고 밉상스러우면서도 정이 가는 진짜 현실 남편이 된다. 호감은 가지 않더라도 연민이 가는 인물이다. 마치 우리 집에, 또는 옆집에, 또는 같은 동네 어딘가에 살아 숨쉴 것만 같은 어느 집 남편. 그게 고 대리이다.



 

날마다 경제가 좋지 못하다는 뉴스가 나온다. 지방 공단에서는 이미 많은 회사가 문을 닫고 있다. 단골 가게가 폐업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월급이 밀려 사장과 직원 사이 다툼이 생기는 일도 많아졌다. 전염병의 여파가 어느 정도 지나갔는데도 너무 많은 고 대리들이 수상한 퇴근길을 방황하며 언젠가 올 좋은 날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연락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진심으로 마음을 털어놓을 이도 없고, 나보다 못났던 사람들이 다 어느새 나보다 잘나가는 것만 같고, 그걸 인정하자니 자꾸만 내가 얕보이고 작아지는 것만 같아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자꾸만 남을 공격해서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는 일. 너무나도 현실적인 리얼리즘이다.

 

마치 잘 만든 아침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수상한퇴근길 #한태현 #ic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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