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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인사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평점 :

#도서제공
p.95 장은 치밀어 오르는 연민과 억눌러 왔던 갈망 사이에서 말을 던져만 놓고 잇지 못했다. 마치 유언을 재촉해 받아내려는 사람처럼 떳떳하지 않게 느껴졌다.
함정임 작가의 글에는 어떤 ‘여행’이 녹아 있다. 인물들이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며 또다른 인물이나 사건, 새로운 공간을 맞이한다. 그 장소에 대한 지나친 묘사나 대단한 소개가 없는데도, 세심한 문체로 빚어진 인물을 흥미롭게 따라가다 보면 독자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여행 속으로 휩쓸린다.
『밤 인사』에는 종횡무진 숨가쁘게 달리는 커다란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작품을 아는 만큼 보이는 인용과 언급, 어느새 사람을 골몰하게 만드는 스토리,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자꾸만 끌리는 인물들이 있다. 장과 미나, 윤중이라는 세 인물이 서로 같은 방향으로, 또는 다른 방향으로 걸으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마주쳤다가 멀어졌다가, 헤어졌다가 그리웠다가.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을 작가는 특유의 담담하고 유려한 문체로 풀어낸다.
p.159 희망이란 불가능과 가능 사이의 안개, 구름 같은 것이었다. 차라리 불가능에 가까웠다.
작중에는 여러 지명이 언급되는데, 개중 부산이 있다는 점이 조금 놀라웠다. 파리, 부르고뉴, 세트, 포르부, 그리고 부산과 간절곶. 어쩌면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막연한 유럽의 낭만과는 조금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는 지명이 등장하면서 독자는 이들이 과연 함께 한국의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에 빠지게 된다. 미나의 마음은 어디로 기울어져 있을지, 장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읽는 동안 개인적으로 장에게 마음을 많이 썼던지라 종래에는 탄식을 거듭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함정임 작가의 글을 읽을 때 가장 놀라운 점은, (실례되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경력이 긴 것에 비해 굉장히 트렌디하고 세련된 글을 쓰신다는 점이다. 『밤 인사』에서는 인물들의 SNS가 그들을 표현하고 연결하는 주축이 된다. 사랑하는 작품에서 발췌한 글을 SNS에 걸어두기도 하고, 그런 SNS를 훔쳐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또는 추억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언급되기도 한다. 사실 20대로서, 오랫동안 사랑해온 작가들의 신작을 읽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사랑하는 작가가 더 이상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함정임 작가의 글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문체는 변함없이 섬세하고, 작품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 현실을 비추고 문학의 트렌드를 선도한다.
세 명의 인물이 기묘하게 얽히고설켜 흘러가며 건네는 밤 인사. 이 글에 끌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밤인사 #함정임 #열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