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의 49재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아사히나 아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시공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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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110 내 안에서 슌이 태어나고, 슌 안에서 내가 태어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도롱뇽이 자랐다. 내가 검은 도롱뇽이고 슌이 흰 도롱뇽이다. 빙글빙글 돌면 하나가 되는, 둘이서 하나인 음양어.


우리는 ‘나’를 무엇이라고 인식할까? ‘나’는 어디서부터 나이고 어디까지가 나일까?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육체일까, 의식일까? 아사히나 아키의 『도롱뇽의 49재』는 간결하고 쉽게 읽히면서도 상당히 파격적이고 충격이었다. 단순히 20대의 정체성 혼란과 자아 고민을 이야기했다면 그저그런 수십 편의 성장 소설 중 하나로 남았겠지만, 『도롱뇽의 49재』에서 작가는 ‘결합쌍둥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통해 책 속의 안과 슌 뿐만 아니라 책 밖의 독자까지도 그들의 자아와 정체성을 오랫동안 고심하게 만든다.


한국 매체에서는 ‘결합쌍둥이’라는 말보다 ‘샴쌍둥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해왔다. 그러나 안과 슌이 우리가 흔히 아는 샴쌍둥이와 다른 점은, 보통의 그런 쌍둥이들이 몸의 일부만을 공유하는 대신 안과 슌은 ‘하나의 몸’을 가진다는 점이다. 얼핏 보아서는 단순히 비대칭이 심한 신체장애로 보일 정도로 그들은 어느 부분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쌍둥이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의사도 부모도 모르는 채로 자라난다.



p.90 그러면 세상에서 오직 하나, 안은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소외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며 안을 애틋해하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안과 슌은 아마도 문학계를 넘어서서 웬만한 창작물을 모두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상당히 특이한 캐릭터다. 독자는 페이지를 넘기며 이 두 인물이 정말로 ‘두 명’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피부색과 움직임이 미묘하게 다르고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진다고 해서 하나의 신체를 가진 사람을 두 명으로 볼 수 있는가? 그렇게 보아야 한다면, 이 자매는 해리성 장애 환자와는 무엇이 다른 걸까?


그러나 소설은 안과 슌을 당연한 개별의 존재처럼 묘사하며 둘 각각의 시점과 행동을 서술한다. 숨가쁘게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몸이 하나라는 것보다 큰아버지의 죽음이나 49재가 더 큰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이 소설의 그런 서술들 자체가 그들이 ‘둘’이라는 증명이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안과 슌은 내가 이해하거나 파헤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그들로서 존재하고, 나는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잠시 엿볼 뿐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파격적인 소재는 단순히 이목을 끌고 충격을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의 소수자와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매는 자매임을 증명하기 위해 부모가 병원과 법원을 오가며 서류 싸움을 해야 했고, 일터에서는 장애인으로 오해한 이들의 민원으로 인해 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나 장애인, 이민자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는 자매의 삶에서 ‘온전한 나’는 무엇인지, 왜 그들은 스스로를 이토록 힘들게 ‘증명’해야만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 여담으로, 내지의 쪽 번호 모양이 상당히 특이하다. 보통 내지 편집을 할 때는 짝수 쪽에 도서명을, 홀수 쪽에 챕터 소제목을 표기하고 각 페이지에 쪽 번호를 매긴다. 그런데 『도롱뇽의 49재』는 홀수 쪽 중앙에 양쪽 쪽 번호 두 개가 나란히 표기되어 있다.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특이한 레이아웃이나 잘 만들어진 표지를 보면 출판사에서 상당히 사랑받은 책이구나, 싶어 괜히 마음이 좋아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롱뇽의49재 #아사히나아키 #시공사 #아쿠타가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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