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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머신 위의 변호사 - K-법정 좀비 호러
류동훈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러닝머신 위의 변호사』의 가장 특이하고 매력적인 점은, ‘K 법정 좀비 호러물’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르라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 소설에서도 호러나 스릴러 장르를 흔히 볼 수 있지만 경찰이 아닌 법조인이 주인공인 경우는 드물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하는 장편은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로는 흔해졌지만 장편 소설로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러닝머신 위의 변호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장르 특성상 잔인하고 적나라하다고 느껴지는 표현들이 꽤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더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다가올 것 같다. 단순히 선하거나 진부하게 악하지 않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입체적인 인물들이, 좀비 사태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거나 배신하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정말로 이 상황에서 가장 위협적이고 두려운 게 좀비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소설 서평은 대개 대략적인 스토리를 설명하거나 대사를 많이 발췌하는데, 『러닝머신 위의 변호사』는 드라마같은 매 챕터가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혹시라도 이 서평을 읽을 분들이 스포일러 없이 책을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에 스토리 언급을 최대한 줄였다. 확실한 건, 에필로그까지 모두 읽고 책장을 덮고 나면 더 이상 두려운 건 좀비가 아니게 된다.
좀비가 두려운 것은 말이 통하지 않고 본인의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을 기꺼이 해치는, ‘욕망’과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인간은 좀비와 얼마나 다른가?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일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타인을 짓밟고 해하는 인간이 정말로 욕망의 괴물이라고 불리는 ‘좀비’와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러닝머신 위의 변호사』는 스토리와 동시에 구성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목차의 대제목이 음악 용어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끈다. 아다지오(느리게)로 시작된 소설은 질병 X 사태가 흘러가면서 알레그로-프레스토-프레스티시모(아주 빠르게)로 점점 빨라지며 치닫는다. 그러다 에필로그가 등장하는 마지막 챕터는 템포 프리모로 끝난다. 템포 프리모는 다시 처음의 빠르기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밴드 보컬을 할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은 저자가 빠르기를 표현하는 용어로 소설의 기승전결을 매끄럽게 정리한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
작중의 채팅이라는 요소를 단순히 따옴표나 대괄호가 아닌 메시지 버블 모양으로 표현한 것도 몰입도가 높아져 좋았고, QR코드를 찍으면 OST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은 기획이라고 느껴졌다. 얼핏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영상에 비해 시청각적으로 압도되는 감각이 덜한 텍스트의 단점을 크게 보완함으로써 독자가 책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듯했다. 자칫 올드한 소설 독자들에게는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장치를 장르문학이라는 특성에 힘입어 과감히 시도한 저자의 센스가 존경스럽다. 특히 웹소설 UI에 익숙한 젊은 독자층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올 듯하다.
특이한 소재, 특이한 구성으로 많은 매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르 소설이었다.
#러닝머신위의변호사 #미다스북스 #류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