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차별 - 그러나 고유한 삶들의 행성
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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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가 발매된 것은 2011년이었다. ‘어떤 정체성이든 이렇게 태어난(Born This Way)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말해주는 노래가 오랫동안 차트에 걸려 있었고 모두가 따라 불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세상에서 톱 가수가 Born This Way를 외치고 14년이 지난 지금, 과연 모두의 정체성은 존중받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당신은 차별주의자입니까?” 하고 물으면 열에 아홉, 또는 열 모두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차별주의자가 아닌가? 이 문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라면 지구상에서 차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진작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졌어야 한다. 그러나 차별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현존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불편해하며, 누군가는 타파하기 위해 투쟁하고, 누군가는 그 차별로부터 오는 이득을 위해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그 사회에 안개처럼 내려앉은 무시, 배제, 혐오, 차별은 때론 느낌의 변주로 때론 물리적 억압으로 침범한다. (중략) 그 감정들 가운데 초라함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초라함은 누구나 아는 감정이다. 그리고 상대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작동한다. p.8-9 머리글

 

차별이 안개처럼 내려앉아 있다고 표현되는 이유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것이 거기에 스며들어 있음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 감수성의 발전에 따라 미국의 노예제나 한국의 호주제와 같은 많은 제도적 차별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많은 차별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 마치 안개처럼 그들의 발목을 옥죈다.

 

인간차별에 등장하는 사례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수자성을 갖고 있다. 이민자이거나 여성이고, 또는 노인이거나 퀴어다.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쉽게 떠올리기 힘든 입양 가정이나 청소년 부모, 난민의 이야기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차별이 곧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차별이 그토록 가까이 있기 때문에 연대를 통해 허물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회의 시선으로 본인의 정체성이 초라해진다고 해서 그 정체성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저 그 사회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니까.

 

나는 선하다 내세운 내 의도, 곁에 있다고 주장한 연대선언에서 무언가를 흘렸다. 아마도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한 무지같다. 타인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p.106

 

차별을 타파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그 소수자들을 돕는다는 시혜적인 생각에 빠지는 실수를 한다. 또는 단순히 같은 소수자성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상대의 삶을 모두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스스로의 무지를 고백함으로서 그런 태도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누구나 차별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나 또한 차별주의자였다거나 내가 무지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이 부분이 책 속의 수많은 문장들 중 가장 진솔하고 가장 무거운 문장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너무나도 많은 차별을 알게 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우리가 그 차별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삶이 세상을 꾸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소수자성을 갖지 않는 독자더라도 좋다. 죄책감을 갖거나 깊이 고뇌하며 읽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소수자가 어떻게 불리는지, 차별금지법은 왜 항상 뜨거운 감자고 어떤 단체가 정확히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별을 똑바로 마주할자신만이라도 있다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만큼 인간차별은 아주 라이트하고 상냥하게 쓰여 있다. 동시에 소수자들에게는 내가 나로서존재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고 알려주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냥 하나의 삶으로 살아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김영사 #인간차별 #안희경 #공삼_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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