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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3월
평점 :
1990년에 마광수 교수는 이런저런 가지각색의 똥을 누는 푸근한 배설꾼이고 싶다고 썼다. 한 가지 글쓰기에만 매몰되지 않고 문학은 물론이고 다양한 예술을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선생이기보다는 친구이고 싶다고 썼다. 그로부터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는 학생들에게 친구이고 싶었지만 일부 학생들이 그를 도서강매나 하는 교수로 매도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접하니 씁쓸하다.
스스로 쾌락주의자라고 말하고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며 자살자를 욕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는 뼛속부터 자유인으로 보인다. 그는 욕을 집어먹더라도 기꺼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쪽을 택한다. 결과적으로 그런 선택으로 인해 그가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솔직한 글을 쓴 이유로 구치소에 가기도 했고 동료 교수들에겐 집단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까지 걸렸다. 툭하면 언론에서도 매를 맞는다. 실형을 살았기 때문에 차후 교수 연금도 받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 것 같다. 마광수 하면 ‘애처로운 자유인’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그의 말대로 그는 한국에 태어난 것이 억울할 것도 같다. 정작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왜 그리 세상이 그를 욕하는지 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 하기엔 짧지만 그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의 소설의 근원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력서란 제목이 그야말로 적합한 것 같다. 그의 솔직한 연애사부터 가족이야기까지. 그는 보태지 않고 담담하게 회상한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는 다소 게으르고(아등바등 살려 하지 않는다고 할까), 즐길 수 없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타고난 악동 예술가 체질인데 그런 그의 기질이 한국사회라서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접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는 자유롭게 예술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선진적인 문화환경이 아닐까. 그는 아동성추행범도 아니고 이제껏 여성을 성폭행했다든가 여자를 학대해서 기소된 적이 없다.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끌려가 취조받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화가 나고 한숨이 나왔다.
그의 소설을 읽은 느낌도 그렇고, 이 책을 읽은 소감도 그렇고 아주 솔직한 책이라는 느낌이다. 왜 나는 사람들이 그를 그리 도덕적으로 비난하는지 알 수 없다. 정말로 그의 책 즐거운 사라가 사람들을 음탕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었나? 이 사회에는 비도덕적이면서도 겉으로는 교양인인 척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람도 많다. 분명한 건 마광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란 것이다.
하려고만 들면 솔직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도 아는 사람이지만 그는 다만 솔직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마광수는 나에게 있어 한국에서 가장 솔직하고 두려움 없는 작가로 남을 것이다. 근엄한 교수님인 척하기보다 자유로운 예술가이기를 바란 마광수. 그의 독자로서 앞으로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