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날 꼬리가 보이는 그림책 8
이수연 글.그림 / 리잼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잿빛 그림속의 이사 가는 날. 어떤 내용일지 표지만 보고서도 호기심이 동했다. 그림이 대체적으로 어둡게 표현된 것은 재개발이 되는 주택가를 배경으로 해서인 것 같다. 잘사는 동네 아이들은 부모님이 직장에 나가면 게임, 티브이 등등 갖고 놀 것이 많겠지만 곧 철거될 동네에 사는 ‘나’는 혼자서 친구를 ‘만들어서’ 논다. 손으로 고양이, 늑대, 독수리 그림자를 만들어 노는 것이다. 다행히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지는 않다. 강아지 랑이랑 점프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논다. 친구도 없는 동네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공간이다. 랑이와 놀던 골목이 사라질 거라는 생각에 나는 슬프다.

 

어렸을 때 내 기억속의 이사가는 날은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이삿짐아저씨들이 와서 짐을 싸고 나르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사다리차가 베란다를 통해 올라오는 것도 신기하고 새 집까지 가는 길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이사 가는 날은 어린 나에겐 신나고 즐거운 날이었다. 물론 떠나는 동네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중에 크면 이곳에 와봐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나중에 와도 이곳에 내가 살던 그 집들이, 골목이 없다면 어떨까?

 

이 동화책 속의 소녀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이사 가는 것을 그리 기뻐하지 않는다. 다시는 이 동네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놀던 동네에 포클레인이 들어서고 마구 부서뜨리고 짓이긴다면 어떤 기분일까?

 

무채색이 주로 쓰인 이 책은 재개발을 앞둔 동네의 분위기와 어린 소녀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소녀는 이제 곧 만나게 될 새로운 동네에 대한 기대보다 그동안 자신의 무대가 되어준 철거될 동네와 이별하는 아쉬움을 짙게 드러내고 있다. 내가 살던 집에 철거된다는 것은 내 유년시절의 기억도 뭉텅 잘려나가는 것.... 그런 사실을 어른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길주 옮김 / 책만드는집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꽃처럼 불타오르는 여자 안나. 사회적 관습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안나의 모습을 보면서 남녀의 사랑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또 어떤 나라건 간에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윤리와 관습에 지배를 받는 시대이고 게다가 지위가 높은 상류층들이라 그 고통은 말할 것도 없이 컸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이었다. 다소 무책임한 남자인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반해 불꽃같은 감정에 휘말려 행복해하다가, 사랑이 식은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연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우직한 성격의 레빈은 키티에게 청혼했다가 퇴짜맞은 것이 자존심 상해서 다시는 키티를 보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결혼하고 결혼생활의 구속에 조금은 답답해하기도 한다.

 

아들이 있는 안나는 젊은 남자인 브론스키를 사랑하게 되어 자신의 사랑에 대해 당당하려고 애쓰지만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중요한 안나의 남편은 쉽사리 이혼해주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안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도 아니고, 그녀가 바람을 피운 것이 사실이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 일이 소문나서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될까봐서 안나가 아기를 낳다가 죽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기까지 한다.(안나와 같은 여자는 절대로 이런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먼저인지,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먼저인지 과연 그 두 개를 나란히 저울에 올렸을 때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지는 것인지 궁금하다. 조용하고 참한 처녀인 키티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안나지만 당시의 답답한 시대적 상황에서는 여성이 사랑을 주체적으로 하기 힘든 시대였다.

 

어쨌거나 나는 안나라는 인물이 참 매력적이어서 다른 인물들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는데 과연 안나의 선택이 최선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은 너무나 강렬하게 그려져 있어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잔영이 남는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고 예쁜 키티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브론스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안나. 당당한 아름다움으로 사교계를 주름잡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것이 이 영화가 지금에도 여전히 영화화되어 인기를 얻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편역이라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안나를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이력서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0년에 마광수 교수는 이런저런 가지각색의 똥을 누는 푸근한 배설꾼이고 싶다고 썼다. 한 가지 글쓰기에만 매몰되지 않고 문학은 물론이고 다양한 예술을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선생이기보다는 친구이고 싶다고 썼다. 그로부터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는 학생들에게 친구이고 싶었지만 일부 학생들이 그를 도서강매나 하는 교수로 매도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접하니 씁쓸하다.

 

 

스스로 쾌락주의자라고 말하고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며 자살자를 욕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는 뼛속부터 자유인으로 보인다. 그는 욕을 집어먹더라도 기꺼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쪽을 택한다. 결과적으로 그런 선택으로 인해 그가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솔직한 글을 쓴 이유로 구치소에 가기도 했고 동료 교수들에겐 집단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까지 걸렸다. 툭하면 언론에서도 매를 맞는다. 실형을 살았기 때문에 차후 교수 연금도 받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 것 같다. 마광수 하면 ‘애처로운 자유인’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그의 말대로 그는 한국에 태어난 것이 억울할 것도 같다. 정작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왜 그리 세상이 그를 욕하는지 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 하기엔 짧지만 그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의 소설의 근원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력서란 제목이 그야말로 적합한 것 같다. 그의 솔직한 연애사부터 가족이야기까지. 그는 보태지 않고 담담하게 회상한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는 다소 게으르고(아등바등 살려 하지 않는다고 할까), 즐길 수 없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타고난 악동 예술가 체질인데 그런 그의 기질이 한국사회라서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접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는 자유롭게 예술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선진적인 문화환경이 아닐까. 그는 아동성추행범도 아니고 이제껏 여성을 성폭행했다든가 여자를 학대해서 기소된 적이 없다.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끌려가 취조받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화가 나고 한숨이 나왔다.

 

그의 소설을 읽은 느낌도 그렇고, 이 책을 읽은 소감도 그렇고 아주 솔직한 책이라는 느낌이다. 왜 나는 사람들이 그를 그리 도덕적으로 비난하는지 알 수 없다. 정말로 그의 책 즐거운 사라가 사람들을 음탕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었나? 이 사회에는 비도덕적이면서도 겉으로는 교양인인 척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람도 많다. 분명한 건 마광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란 것이다.

 

하려고만 들면 솔직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도 아는 사람이지만 그는 다만 솔직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마광수는 나에게 있어 한국에서 가장 솔직하고 두려움 없는 작가로 남을 것이다. 근엄한 교수님인 척하기보다 자유로운 예술가이기를 바란 마광수. 그의 독자로서 앞으로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게임 안데르스 데 라 모테 3부작
안데르스 데 라 모테 지음, 박규호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가 처음엔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무섭다. 소설의 내용과 연관지어서 그런건가.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들의 이야기야 이제 더 이상 소설 속에서 놀라울 것도 없는 이야기 같다. 이 소설은 누군가 범죄를 결국 게임처럼 하게 된다는 것인데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일이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요즘, 이 소설속의 이야기가 전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더더구나 게임이라면. 아기엄마가 아기를 집안에 두고 게임에 중독되어 아기가 집에서 죽어가는 것도 몰랐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게임에 중독되는 것은 사실 개인의 의지와 별 상관이 없는 일인 것 같다.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경험이야 누구나 한번쯤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침에 일어나 손안의 핸드폰을 통해 확인하는 온갖 비참하고 믿기 힘든 험악한 기사들이 가끔은 정말 현실일까, 기자가 소설 쓰듯이 써놓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살인동영상 같은 것들도 저것이 정말일까, 누군가 돈을 받고 조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야말로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세상 아닌가. 결국 익숙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 아닌가. 아무것도 필터링되지 않고 다 공개되는 세상이라면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고 말초적인 즐거움만 좇는 무서운 괴물들이 하나 둘 늘어갈 것이다.

 

미션을 수행하면 점수가 늘고 돈까지 주어진다. 누가 이 게임을 중단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왜 페테르손이 선택되었을까를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는 엄중하게 선택된 것이 아닐까. 가장 만만해보여서. 이런 유혹에 쉽게 걸려들 만한 사람이라서?

 

후반부에 반전이 있는데 이 책이 마지막 권이 아니라니 다음 소설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현대인은 불안감과 권태감에 휩싸여 있으므로 언제든 무언가 자극적인 것에 중독되어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가 아닐까. 누군가를 괴롭히고, 착취하고.... 심지어 죽이고. 이 소설이 그저 한권의 소설이 아니라 개연성 있는 허구라는 생각을 하면 함부로 게임을 하시겠습니까? 라는 요구에 응하지 못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육일약국 갑시다 - 나는 4.5평 가게에서 비즈니스의 모든 것을 배웠다!, 개정판
김성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동네에는 골목마다 약국이 있다. 너무 많아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되지만 늘 선택하게 되는 곳은 십분은 걸어야 하는 마트 안에 있는 약국이다. 집바로 옆에도 약국이 있는데 왜 난 거기까지 가는 걸까. 마트 안에 좁은 공간을 차지한 그 약국은 다른 약국처럼 외관이 멋지지도 않고 어여쁜 약사언니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멀어도 그곳으로 가게 된다. 육십대를 바라보는 나이드신 약사 아주머니가 늘 같은 얼굴로 손님을 맞아주는 약국. 가끔은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나와있지만 약사아줌마가 결석하는 일은 드문것 같다. 혹시라도 아줌마가 나오지 않은 날이면 나는 걱정이 된다. 몸이 안 좋으신가...? 하고. 약사를 걱정하다니, 피식 웃으면서. 거기는 다른 곳보다는 약값이 조금 싼데 나는 그냥 막연하게 그 약사님이 손님을 속이지는 않는다고 믿고 있다. 절대로 과하게 약을 권하지 않고 몸살이라고 찾아가면 심하지 않으면 버텨보라고 한다. 그곳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으면 이상하게도 저쪽에 향수냄새 풀풀 풍기며 진한화장을 하고 과하게 약을 권하는 약사언니가 주는 약보다 약효가 빨리 나타나는 것 같다. 단순히 나의 착각일까. 사람의 몸을 고치는 사람은 분명 인간적인 태도로 손님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소한 것이 분명히 사람의 몸을 고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육일약국이 성공한 것도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좁고 작은 시골약국이 어떻게 기업형약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느냐를 추적해 들어가면 사소한 것에서부터 신경을 쓰고 고객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함을 기본 무기로 무장한 지극히 기본적인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육일약국의 사장은 4.5평의 작은 약국을 개업하면서 아주 작은 친절을 하나 둘 실천해나간다.

 

일단 택시를 탈때마다 육일약국 갑시다 라고 말해서 택시기사들에게 육일약국의 존재를 알린다. 나중에는 지인들에게도 부탁을 해서 택시를 타면 육일약국가자고 말해달라고 한다. 어느세월에,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느새 육일약국은 택시기사 사이에서 유명해진다. 더 나아가 전화가 흔치 않던 시절 그는 고객들에게 무료로 전화를 쓰게 해서 사람들이 약국으로 들어오게 만든다. 드링크하나를 팔더라도 친절하게 응대해 사람들이 한 번 더 찾아오게 만든다. 길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약국문을 닫고 직접 찾아준다. 그러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족은 또 육일약국의 고객이 된다. 결국 육일약국의 비결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 고객을 내 가족과 같이 생각하고 신뢰를 얻어내는 것.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더더욱 실천하기 힘든 기본원칙이 아닌가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