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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의 청포도 - 이육사 이야기 ㅣ 역사인물도서관 4
강영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문학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는 시
청포도,
절정,
광야
이 중에서 청포도는 아직까지도 외우고 있는 시 중 하나에요.
저항 시인 이육사.
시인의 수감번호가 264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육사 시인의 본명이 무엇인지..
그 외 그의 삶을 들여다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네요.
그래서
이육사의 이야기를 담은
<칠월의 청포도>가 더욱 읽어보고 싶었어요.
이제.. 그의 삶을 한 번 들여다 볼까요?

그의 본명은 이원록.
1904년에 태어나 20살이 되던 해에
일본 유학길에 올랐어요.
왜 하필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까?
하고 궁금했는데..
그는 어째서 일본이 조선을 핍박하는지..
저들이 어떻게 강해졌는지 알고 싶었어요.
왜 일본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는 지배를 당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죠.
그렇게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원록.
하지만, 일본의 지배가 10년을 훌쩍 넘기면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유학생들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을 선택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지요.
일본 유학이 선진 학문을 익히는 게 아니라
완전한 일본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 되버린 것이에요.
같은 학교를 다니던 조선 유학생이
유카타를 입고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조선 청년을 폭행하고,
같이 어울리는 일본인들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흐뭇하게 웃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것이지요.
원록은 일본에 머물면서 타락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일제에 찬동해서 자기 이익만 조용히 기다리는
사악한 거미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원록은 일본에 유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났던
김묵을 가끔씩 만났지요.
아나키스트인 김묵은 메이지 대학교에서 법을 전공한 조선인 유학생이었어요.
그런 김묵이 공부를 할수록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바로 일본 천황에 관한 것을 원록에게 이야기 해주었어요.
일본은 천왕의 기계나 마찬가지요.
실제 일은 사무라이와 장사꾼들 그러니까 군대와 자본가들이 하지만
천황은 일본인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갈 동기를 주지.
그들은 뇌가 없는 자들이나 마찬가지요. 자기 의지가 없지.
그러니 침략이 나쁜 줄도 모르고, 반성도 하니 않는 거요.
살인을 명예롭게 여기고 할복을 자랑거리로 여기지 않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일본이 왜 아직도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고,
역사를 왜곡하며 후손들에게 정확한 역사를 알려주지 않으며
아직도 반성을 하지 않는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이해가 되더라구요.
근대적인 법이 있지만 천황은 법 위에 있고,
천황이 일본이고, 일본이 천황인...
천황이 정해 준 일을 따르는 게 자신의 삶이라고 여기는...
침략도, 전쟁도, 살인도, 억압이나 착취도
천황이 정한 일이라면 거리낌 없이 명예롭게 수행하는 게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일본은 문명국이 아닌게 분명한 것 같아요. ㅠ.ㅠ

우리나라로 돌아와 지내다가
독립운동을 위해 일본의 관공서와 대구 식산 은행, 조선은행 등에
폭탄을 발송해 은행 건물을 폭파시켰던 사건에 연루되어
형제들과 함께 감옥에 수감된 원록.
그때 그의 수감번호 264.
도쿄 시절 불량한 조선인이라며 일본인들이 부르던
불령선인이라는 말을 본떠 불령사라는 이름을 지었던 아나키스트들처럼
간수들이 자신을 부르는 이육사에
놈들을 희롱하는 의미를 담아 실컷 비웃어 주고 싶었던 원록은
자신도 일본과의 외로운 전쟁에 뛰어들기고 다짐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새롭게 이육사로 정했어요.
지금부터 원록을 지우고 육사가 된다.
현재를 비트는 이름, 이름만으로 저항과 불쾌감을 주는 이름,
일제의 금기를 건드리는 이름,
오욕의 역사를 다시 쓰는 그런 이름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활, 대구 264, 육사, 고기 육(肉)에 쏟을 사(瀉),
아니 죽일 육(戮)에 역사 사(史).
그 이름을 들고 역사를 바꾸러 나아가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 동시에 당국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글.
그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부터 원록은 이 문제에 골몰했었는데.. 그때 원록의 가슴에 떠오르는 게
바로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 배웠던 한시였어요.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에 시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지요.

당시의 조선 사회는 일본의 식민 지배가 장기화되면서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요.
별거 아니라고 무시했던 친일 세력이
야금야금 조선의 정신을 앗아 가자
마침내 민족 정신 자체가 꺾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조선일보>, <동아일보>같은 언론사들은
윤봉길 등 독립 투쟁의 영웅들을 폭도나 흉악범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친일 단체들도 하나둘씩 대중의 눈치를 보며 생겨나고 있었어요.
조선어는 사라져 가고, 친일차는 득세하고,
일제의 야만적 정책이 펼쳐지는 이 시점에,
<문장>과 <시학>의 창간은 마지막 남은 민족의 자존심이었어요.
비록 두 잡지의 생명은 길지 못했지만
민족어를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이 되어 주었지요.
육사는 이 두 잡지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도쿄 골목을 누비며 불령선인을 자처했떤 아나키드트 동지들,
대구 은행에 폭탄을 투척하고 조선 총독부에게 협박 편지를 썼던 장진홍 선생,
첫 중국행을 주선해 준 이정기 형,
상하이 시절 뤼쉰 선생과 여유당전서를 펴낸 정인보 선생,
무엇보다도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을 때
거적때기에 덮여 수레에 실려가던 이름 모를 혁명가들.
그들은 무슨 꿈들을 꾸었기에 목숨마저 거침없이 내놓았던 것일까..
억악받지 않는 것, 자유를 누리는 것,
고통받지 않는 것, 가족과 이웃과 어울리며 건강하게 사는 것,
떳떳한 것, 당당한 것, 식민지인이 아닌 것,
차별이 없는 것, 자존심을 지키는 것, 꿈꿀 자유를 누리는 것.
어느덧 그들의 꿈은 한 알 한 알이 이어지고 커다란 넝쿵이 되어
육사의 머릿속을 온통 휘감았어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야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 청포도>, 이육사
제게 가장 여려운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역사인데요..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가 전 너무 어렵더라구요.
분명 중요한 역사인데,
나오는 인물도, 사건도 너무나 많고, 단체들도 많아서
헷갈리고 외우기가 참 힘이 들었어요.
아마도 역사를 우리 민족의 삶의 발자취이며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기에 꼭 알아야 하는 것임에도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 하나로만 인식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칠월의 청포도>를 읽으면서
지금이라도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특히 일제 강점기때의 역사적인 인물들에 관한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그들의 생각과 삶과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그러한 노력 없이 그저 요약된 것들을 외우려고만 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어요.
<칠월의 청포도>를 보면서
이육사 시인의 삶을 통해 일제강점기때 내가 태어났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그의 시가 더욱 잘 이해되고 마음에 와 닿았답니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네요.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서,
더이상 독립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서
이육사의 시가 지금의 우리에게 그저 과거에 대한 울림만을 주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기적인 욕망과 충동에 맞서
늘 싸워 나갈 우리들 자신이
육사가 애달프게 기다리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될 수 있도록...
2022년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칠월의 청포도>를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 북멘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