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상한 이름 - 충돌하는 여성의 정체성에 관하여
멜리사 호겐붐 지음, 허성심 옮김 / 한문화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낼모레면 마흔, 결혼을 생각 중인 친구가 모임에서 고민을 토로했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결혼하면 바로 임신을 준비해야 하잖아. 남자친구도 그걸 원하고. 근데 내 주변에선 아이 낳고 다 일을 그만뒀거든. 아주 극소수만 맞벌이하고,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난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결혼도 쉽게 선택을 못 내리겠어."


결혼 적령기, 혹은 -임신을 준비하는- 기혼 무자녀 여성이 맞닥뜨리는 대표적인 고민이 아닐까 싶다. 힘들게 공부하고,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들여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몇 년 일하고 육아를 하다 보면 순식간에 경력이 단절되고 만다. 살림과 육아가 적성에 맞아 그것에만 집중하거나, 재테크 등의 다른 길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원래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앞서 언급한 친구처럼 아이와 일 중에 양자택일해야 하는 때가 온다.

 

요새는 아빠도 육아 참여를 많이 한다던데, 왜 육아는 유독 엄마에게만 힘들까?분명 '힘듦'은 존재하는데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엄마'의 세계, 그 세계를 BBC 과학 전문 기자 출신 멜리사 호겐붐이 과학의 눈으로 상세히 분석하였다. 바로 이 책, <엄마라는 이상한 이름>에서.


 


책은 엄마라는 역할이-특히 워킹맘의 입장에서- 왜 이렇게 고된지, 무엇이 엄마를 육체, 정신적으로 압박하는지, 열두 개의 장에서 상세히 분석한다.


 


'여는 글'의 제목부터 이 책의 정체성이 명확히 드러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왜 투쟁이 되어버린 걸까?' -저자의 경우- 언론인, 심리학 전공자, 달리기 선수, 딸, 친구라는 정체성은 '엄마'라는 정체성 하나에 모두 잡아먹히고 만다.(6p) 동시에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환상은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압박으로 내몬다.(9p)

 

1장, '임신기간의 뇌 변화'는 왜 임신한 여성의 기분이 널뛰기하는지,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아이를 가진 엄마의 뇌는 아이와 애착을 느끼도록 회백질이 감소하고, 측중격핵이 감소하는 동시에 활성화되어 아이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인지능력이 쇠퇴하고 예민해지는 등 흔히 '엄마의 뇌'(임신하면 뇌구조가 변한다는 가정) 문제가 허구는 아님을 증명한다.

 

2, 3장에서는 출산 후의 정신, 신체적인 변화에 대해 다룬다. 앞서 언급한 정체성의 급작스럽고 전반적인 변화가 혼란을 야기하고, 산후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위험한 출산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수면 부족도 포함된다- 등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다. 그리고 엄마의 정신적인 문제는 고스란히 아기에게 영향을 끼친다. 산후우울증 엄마의 아이가 대게 감정 조절 문제를 겪듯이 말이다. 신체 변화는 더욱 심한데,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사회생활에 불편을 겪고, 실패하면 반대로 죄책감을 겪으며, 외모의 변화로 겪는 우울감, 성 기능장애, 골반저 근육장애, 골반 장기 탈출증 같은 다양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엄마'라는 거대한 정체성 안에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지곤 한다.

 

4장에서는 직장 내 차별을 밝히는데, 미국에서는 70년대까지도 직장 내 임산부 제한 정책이 있었고, 임신을 원인으로 하는 부당 해고가 당연시되어 임신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현대의 직장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휴직하면 일자리를 잃고, 복직하면 아이를 보육 시설에 오래 맡겨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111p) 

5장에서는 엄마들의 우정을 다룬다. 육아에서 오는 고립감을 극복하기에 엄마 커뮤니티는 중요하지만, 단지 아기를 매개로 한 공통점이 없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한다.

 

6장에 서는 '모성패널티'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다. 사회는 '완벽한 엄마'와 '이상적인 직장인'의 정체성이 양립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성 역할 구분이 존재하고, 그래서 생계를 부양하는 엄마도 주말에는 아빠보다 더 많이 육아에 몰두한다. 출산 후 복귀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성패널티가, 아빠들은 더 책임감 있다는 부성보너스에 더해져, 여성들을 직장 밖으로 조금씩 밀려나게 한다. 승진 기회 축소 등으로 파트타임, 혹은 퇴사를 겪고, 이는 결국 남녀 임금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육아문제를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한다면 직장 내 차별 문제-나아가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이 좀 더 양육에 적합하다는 양육 본질주의, 그렇지 행동하지 않는 여성을 교묘하게 심판하는 시선들,  이것들이 암묵적인 편견임을 인식하고, 사회적 차원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현재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이다. 사회의 기대, 금전적 제약, 엄마 맞춰진 육아휴직 등 양육을 은근슬쩍 여성 앞에 떠미는 정책을 위에서부터 손보아야 한다.(155p) 남성에게도 동등한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지원과 장려하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147p) 그렇지 않다면 퇴사할 수 없는 육아노동에서 엄마는 점점 코너에 몰리게 될 수밖에 없다.



좋은 엄마라는 이상은 우리를 방해한다.

엄마들 대부분이 이미 좋은 엄마인데도 불가능한 이상을 실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의 진정한 자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기적인 생각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아이에게, 가정에 충분하지 못했다는 걱정에서

끝없이 더 많은 것을 하려는 우리의 모순된 모습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아이들을 엄마가 잠시나마 엄마 자신을 우선시한 것에 고마워할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면 아이들도 더 행복하기 마련이다. (28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