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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2008-09-17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조지 오웰이 젊은 시절 파리와 런던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르포르타주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 소설에서는 문학적인 감성이나 언어 유희를 찾아보기 어렵다. 현실의 사건과 사실을 충실하고 생생하게 묘사해낸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하지만 조지 오웰 특유의 해학과 유머가 정말 뛰어나고, 한 번 빠져들면 정말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파리의 빈민가 콕도르 거리에 살던 영국인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고 방에 도둑이 드는 바람에 무일푼 신세가 된다. 가지고 있던 옷들을 몽땅 전당 잡히고도 밥 먹을 돈이 모자라 몇 주를 시체처럼 침대에서 지낸 끝에, 망명한 러시아 장교 보리스의 도움으로 어렵게 호텔 접시닦이로 취직한다. 하루 17시간의 고된 노동을 하며, 그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현대사회 노예'제도에 대해,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일은 노예적이고 기술이 없다. 그는 딱 살아있을 만큼만 보수를 받는다. 그의 유일한 휴일은 해고이다. ....만일 접시닦이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한다면 그들은 아마 오래 전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파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 만한 여가가 없기 때문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놓는다.
이번에는 조금 편한 일자리가 있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런던으로 간 '나'는, 고용주의 부재로 한 달 동안 거리와 구호소, 교회를 떠돌면서 부랑자들과 부랑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하층민과 부랑자의 삶을 다루면서도, 담담하고 재기발랄한 문체를 고수한다. 그것은 그가 소설의 소재를 얻을 요량으로 일시적이고 자발적으로 이 생활에 뛰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난과의 첫 만남인데 이것이 너무나도 이상하다. … 아주 단순하리라고 여겼는데 복잡하기만 하다. 끔찍하리라고 여겼는데 그저 궁상맞고 따분할 따름이다. 이를테면… 빨랫감을 맡기던 세탁소에 발을 끊는데 그러면 세탁소 여자가 지나가는 당신을 보고 왜냐고 묻는다. 뭐라고 얼버무리면, 그 여자는 다른 데에 맡긴다고 여기고 평생토록 당신과 원수가 진다.
하지만, 그가 매일같이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예상을 뒤엎는 사건 사고들과 기이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더 큰 기대감으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조지오웰의 놀라운 점은 여기에 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림을 그리듯 사실적으로 묘사한 서술의 충실성 뿐 아니라, 내가 마치 그 생활 속에 진짜 들어와 있는 것처럼, 피부에 와닿을 듯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섬세한 에피소드들과 그것에 담긴 탁월한 유머감각이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시간마다 책을 더 읽기 위해 회사 앞 역을 그냥 지나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각하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렇게 하지않았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을 것이다. 일상이 따분하다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다. 잠시나마 '리얼 밑바닥 버라이어티'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