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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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진 친한 친구랑 저의 대화의 대부분은 이래요. 

"야, 이번에 정우성, 임수정 나오는 CF 봤냐? 애틋한 옛사랑의 그림자래. 애틋한 거 좋아하시네."
"애틋한은 얼어죽을. 옛사랑은 다 @#@%^&*#%!#@GR#야."
"맞아. 남자들은 다 @#$%^&야."
"남자들 다 #$%^&*( 해버려라."

정말 영화나 드라마, 특히 노래 가사와 우리의 현실은 참 많이 다른 거 같아요.
이별 노래 가사에서는, 정말 사랑이란, 이별이란.. 슬프도록 아름답고, 숭고하고, 희생적이면서도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처럼 말하는데. 정말 현실과는 너무 너무 거리가 먼 거 같아요.

하지만, 또 이런 현실을 그대로 영화나 드라마, 노래로 만들 순 없겠죠.
그럼 너무 재미없을 테니까요. 자극도 없고, 감동도 없고, 구질구질하기만 하고.
(이를 테면, 머리에 총알이 박혀서 오늘 내일 하면서도 "나랑 밥 먹을래? 나랑 사귈래?"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로맨스. 그건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거잖아요.)

하지만, <그저 좋은 사람>은 정말로 현실이예요.
거기에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사랑에 빠지는 남녀도 없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 쓴 결혼도 없어요. 우리를 둘러싼 가장 가까운 현실-특히 가족과의 관계-을 섬세하게 그려내죠. 이기적인 자녀들의 속마음과 이제는 늙고 지쳐버린 부모, 혼자만의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유부남, 무책임한 연인과의 한심한 연애 따위를 말이예요.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섬세하고 깊이 있게 그려낼 수 있다니! 잔잔하면서도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일상적이지만 깊이가 있어요. 감성적이지만 감상에 빠지지는 않아요. 번역도 참 잘한 것 같아요. 오타는 몇 개 있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책장을 덮자, 마음에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 자국이 남아있는 것처럼, 묵직하고 아련한 무언가가 남아요.
줌파 라히리의 다른 작품들도 후딱 사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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