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폴 오스터는, 대학교 때 <달의 궁전>과 <뉴욕 삼부작>으로 처음 접했었는데, 완전히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앞으로 절대 다시는 그의 작품을 읽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서점의 책장에서 이 책을 뽑아든 것은, 순전히 '브루클린'이 갱 영화 마니아인 나에게 매우 친숙한 지명이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이혼하고 폐암 선고를 받은 네이선은, 하나 뿐인 딸과도 의절하다시피한 고집불통인 은퇴한 보험 영업 사원이다. 생을 마감할 장소로 '브루클린'을 택해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서른 살의 조카 톰 우드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시작부터 흥미롭지 않은가! 삶에 의욕을 잃은 까칠한 쉰 여섯 남자가, 대여섯 살 배기 순수한 (손자거나 이름 모를 고아이거나 한) 꼬마를 만나서 삶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죽은 여동생의 아들, 그것도 서른이나 먹은 다 큰 남자 조카를 우연히 만나면서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되다니! 나는 이것이 너무 신기하고,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소설 초반부에는 사람들의 인생이 간단하게 소개되는데, 처음에는 브루클린으로 오기 전까지 네이선의 삶이, 그 다음에는 촉망받던 영문학 박사과정 대학원생에서 아무런 인생계획 없는 헌책방 직원이 된 톰의 인생, 그 다음에는 톰이 일하는 헌책방 주인인 동성애자 해리의 놀라운 과거가 밝혀진다. 그리고는 어릴 때 집을 나간 톰의 여동생 오로라의 삶이 부분적으로 소개된다. 이 밖에도 브루클린의 많은 이웃들이 소개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로라의 딸 루시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폴 오스터의 장기가 발휘된다. 그 때부터 소설이 미스테리 형식을 띄게 되는데, 소설의 전개에 대한 힌트를 좀 얻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로, 처음부터 큰 인내심을 가지고 소설을 읽어왔던 독자들을 더욱 더 큰 미궁 속으로 빠뜨린다.

 

<브루클린 풍자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의 문장이 너무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나는 첫 페이지부터 소설에 완전히 몰입이 되어 버렸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크고 작은 반전으로 시종 독자들을 쥐었다 놨다 했던 소설의 중후반부까지와는 달리, 소설의 끝은 너무나 상투적이다. 따뜻하고 훈훈한 마무리를 위한 작위적인 시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만났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 자메이카에서 온 여장 남자 '루퍼스'가 장례식장에서 보컬 재즈곡을 틀어놓고 슬픔과 사랑을 담아 립싱크 공연을 하는 장면이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바로 영화 <파니 핑크>에도 이와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두 작품 다 사회적 약자의 대표격인 소수 민족(흑인)인 동시에 성적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나타낸 것이겠지. 폴 오스터는 이 소설로 각박한 현대 사회의 세태 -간음, 배신, 정치적 타락, 물질만능주의, 전쟁, 테러 등- 를 고발하면서, 마음의 안식처를 찾고자하는 현대인들의 소망과 고뇌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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